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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Aug 22. 2016

나의 여름, 나의 산티아고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순례길을 걷는 목표가 아닐까

숨까지 터억! 막히는 여름, 저조한 컨디션에 무기력증 때문에 한동안 외출도 자제하고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누구나 그렇듯 잡생각이 많아진다.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땐 전혀 떠오르지 않던 것들이 혼자 있으면 무한대로 떠오른다.


무력감마저 느껴지는 여름날 저녁, 지인 덕분에 아주 우연히 <나의 산티아고>를 보게 되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었고 영화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제목밖에 없었는데 올여름 생각보다 좋은 영화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 상쾌한 기세를 몰아 집까지 40분가량을 걷고 보니 온 몸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덥다고 움직이지 않던 나를 다시 걷게 만든 영화 <나의 산티아고>! 그 순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자.



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줄리아 폰 하이츠 감독의 2015년 작품이다. 독일의 유명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의 산티아고 순례기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을 영화화한 것이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란 뜻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뜻한다. 산티아고의 순례자들은 마주칠 때마다 '뷔엔 까미노(buen camino)'라고 인사하며 서로의 여정을 축복한다. 저마다 이 길을 걷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실제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세상에서 모여든 많은 이야기로 넘쳐나지만 막상 길 위를 걷다 보면 사람들은 그저 '걷는 행위' 이외의 것들은 차순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혹자는 이를 순례길이 주는 자유라고 하고 혹자는 고행이라고 한단다.


여기엔 꼭 내 사기를 꺾는 사람들이 있다


말 그대로 '과로' 때문에 삼 개월 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학적 소견을 듣게 된 하페는 갑자기 찾아온 '쉼'의 시간이 무료하기만 하다. "나 이제 떠날 거야."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별생각 없이 들어선 산티아고 순례길은 정말 생각이라도 하고 왔더라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고된 여정이라고 하페는 생각한다. 여행의 초반 하페는 버스, 양치기의 오토바이 등 운송수단을 이용하거나 '알베르게'라 불리는 순례자 전용 숙소를 거부하며 호텔을 전전한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답을 찾아 이곳에 온다. 난 먼저 질문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매일 20~30km를 걸어야 한다니. 하느님 제발 도와주소서!


하페는 우선 이 길을 계속 걷게 할 질문을 먼저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인간인지라 그것도 평생 무대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간인지라 발에 잡힌 물집이, 침낭 사이로 날아든 바퀴벌레가, 순례자 같지 않은 순례자들이 질문을 찾겠다는 그의 의지를 시시각각 사그러트린다.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 신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

혼자 계속 걷던 하페는 외로움을 느낀다. 평소 삶의 기록 같은 건 관심이 없던 그가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건넬 사람이 자신밖에 없기 때문일까라고 자문하면서 말이다. 하페는 어려서부터 성당에 나갔고, 그를 키운 할머니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본인은 교회에 가지 않았다. 세상에는 욕망하고 싶은 것이 아직 너무 많으니깐.


하페는 무대밖에 모르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순례의 여정에서 하나씩 돌아보게 된다. 어머니를 잃었던 기억으로 시작해서 그가 무대에 처음 서게 된 그날을 떠올린다. 무엇이 자신을 성공한 코미디언이 되게 만든 원동력이었을까. 그를 위한 신의 계획은 정말 존재했던 것일까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된다.


마음껏 마음을 열고, 하루를 껴안아라


하페는 순례길에서 많은 이들을 만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걷는 길이라지만 사람들은 결코 어느 것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하페 본인부터가 삶의 편안함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여정의 초반부터 만난 레나와 스텔라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하페가 여정을 마칠 수 있게 만드는 동료가 되어준다.


언젠가 '신은 사람을 통해 일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더디고 돌아가더라도 사람을 통해 일하는 신의 섭리는 '사랑'이라고 들었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을 연다. 물론 마음을 연다고 해서 길 위에서의 자괴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딸아이를 산티아고에서 잃었다는 스텔라의 부상을 목격한다.


늘 텐트에서 자며 혼자 자신의 목표를 위해 걷겠다던 스텔라는 처음 레나, 하페와 함께 투숙한다. 맛있는 와인과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마신 뒤 딸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을 토해낸다. 그 모든 것을 게워내며 순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데 이번에는 레나와 하페가 그녀를 보듬는다. 그만둘 생각이었던 하페를 다른 순례자가 다독였던 것처럼... 산티아고의 길에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걷고', '만난다' 그리고 그 단순한 행위 속에 수많은 위로와 신의 섭리가 숨겨져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매 순간 신을 만났다는 것이다


결국 하페와 레나 그리고 스텔라는 함께 산티아고 순례를 무사히 마친다. 하페는 언제나 매 순간 신이 자신과 함께였음을 깨닫는다. '너와 나', '나와 당신'이라는 문구를 보며 그는 어렴풋 신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순례의 여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금씩 돌아본 하페는 무대에 서기 위해 만든 이름 하페 케르켈링이 아닌 한스 페퍼 케르켈링이라는 본명을 산티아고 순례 증명서에 적어 넣는다. 그리고 다시 찾은 자신이 늘 신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산티아고의 순례자들은 걷고 또 걷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길 위에 홀로 선 자기 자신과 매일 마주한다. 어떤 신을 믿건 그들은 길고 긴 여정 앞에서 나를 생각하고, 신을 생각한다. 비록 순례를 나선 15퍼센트만이 순례에 성공한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어디, 여긴 누구'라는 이 지난한 물음의 과정을 통해 조금은 더 솔직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고 신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인이 된 이후 나는 점점 무뎌졌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회피할 수 있는 건 모두 회피했다. "잠시 쉬라는 내면의 소리를 무시한 지 여러 달. 그 보복이 드디어 왔다."는 하페의 말을 빌자면 "무엇을 원하는지 점검하라는 내면의 소리를 무시한 지 여러 달. 그 보복이 드디어 왔다." 정도가 적당하겠다. 엄청난 무기력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내게 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다시 홀로 길을 떠나서 걷고 걷고 또 걸으며 길 위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줄리아 폰 하이츠 특유의 영상미 덕에 산티아고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을 보며 마음의 쉼표를 얻은 것 또한 굉장한 소득이었다.


마지막으로 하페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까미노는 사람의 힘을 빼앗았다가 몇 배로 돌려준다.
까미노를 걸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 길은 가능성을 여는 수많은 길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건 나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당장 산티아고로 달려가 나를 만나긴 어렵다. 우선 당장 내가 걸을 수 있는 길을 걸어야겠다. 씩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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