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크노크 Sep 29. 2016

미자씨에게

그렇게 서로의 무게를 나눠가지면 한결 가벼워진다.

아침에 괜히 눈이 떠지질 않더니 결국 평소보다 늦게 집을 나서게 되었다. 지하철 파업으로 연착된 지하철에 발을 딛고, 체중으로 서로를 압박하느라 괜한 힘을 썼다. 부쩍 내려간 기온 때문인지 양옆의 사람들이 니트를 입고 있었고 니트의 먼지 때문에 목이 가려워 기침이 나오려는 걸 꾸욱 눌러 참았다. 지각은 겨우 면했으나 출근을 하는 순간 퇴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위로가 필요하다.


가을이 되면 미자씨가 생각난다. 우리는 서로 한참 달랐지만 제법 잘 어울려 다녔다. 나와 미자씨는 같은 수업을 들었다. 퇴임을 앞둔 백발의 노교수님 수업이었는데 교수님은 20세기의 문학과 연극에 대해 가르치셨고 발레를 사랑하며 음악을 독학하셨다. 미자씨와 나는 수업이 끝나면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여기저기 걷곤 했다. 그렇게 그냥 발 닿는 대로 걷다가 어디든 주저앉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수업에서 본 작품들에 대해 종종 이야기했던 것 같다. 함께 본 작품들 대다수가 부조리극이어서 그런지 이야기의 주제가 그리 밝진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우울한 느낌은 아니었다.


평소와 같은 오후였다. 수업이 끝났다. 날씨가 꾸물거리긴 했지만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 꽤 분위기가 있었다. 우리는 또 아무 목적 없이 걷기 시작했다. 미자씨랑 걸을 땐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돼서 우리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미자씨는 언제나 앞코가 뾰족한 에나멜 로퍼를 신었다. 미자씨가 발을 뗄 때마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날도 미자씨의 로퍼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걸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에야 우리는 나무가 많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시답잖은 대화를 몇 마디 나누다가 이내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미자씨가 먼저 울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울지 않았기 때문에 한참 뒤에야 미자씨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미자씨의 눈물을 보는 순간 나는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지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미자씨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몇몇 고민들을 아주 담담하게 꺼내놓은 것을 빼고는 자기의 이야기를 깊게 한 적이 없었다. 미자씨는 술과 영화 그리고 그림 쪼가리(미자씨는 늘 이렇게 불렀다)들을 사랑했다. 내가 미자씨에 대해 아는 건 그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미자씨를 한 순간도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없었는데 울고 있는 미자씨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다 이해되는 것 같았다.


미자씨를 따라 흘린 눈물 덕에 수면 아래 있던 많은 감정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렇지만 곧 나의 감정들이 투사된 눈물은 그치고 오직 미자씨를 위해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도 조바심도 많은 나에게 엄마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자기 안의 두려움이 많을 땐
다른 이들의 걱정을 대신 짊어지렴.
대신 짊어진 걱정 덕분에 자기의 걱정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게 된단다.
그렇게 서로의 무게를 나눠가지면 한결 가벼워져.

엄마의 말처럼 미자씨를 위해 한참을 울고 나니 내 걱정과 근심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가벼워진 마음만큼 우리의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그때의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미자씨의 단골 펍에 가서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한참을 떠들었다. 노년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외설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미간을 찌푸리던 미자씨의 표정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눈물을 흘렸다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용기 내어 도전한 미자씨의 영화는 30분에서 3분으로 토막 나고 말았고, 나 또한 자잘한 문제들 앞에서 그저 그런 선택을 하며 지지부진했다.


그렇지만 미자씨와 걷고 걷다가 한참을 울던 그 날의 기억은 내 인생을 지탱하는 큰 위로가 되었다.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옆에 나란히 앉아 오롯이 미자씨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게 된다. 내 안의 두려움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의 걱정을 짊어지던 그날의 무게를 기억한다. 무거웠지만 따듯했고, 어려웠지만 외롭진 않았던 그 순간을 나는 추억한다.


유난히 피곤이 몰려오는 요즘 미자씨의 로퍼가 생각난다. 앞코가 닳아버린 검정 에나멜 로퍼. 발소리에 집중하며 걷던 그날의 침묵이 생각난다. 미자씨가 계속 그 좁은 어깨에 카메라를 짊어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흘렸던 눈물이 그립다. 미자씨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통화 신호음이 들리면 어쩐지 들뜬 맘이 들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