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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Apr 20. 2017

그녀 그리고 구로

故 김선민 감독을 추억하며

벌써 난 그녀가 그립다. 어제 예고도 없이 세상을 떠난 그녀가 정말 보고 싶다. 너무 늦은 인사가 아니길 기도하면서 내가 본 김선민 감독의 마지막 전시를 기록하고자 한다. 촉망받던 영화인이던 그녀를 '영화'가 아닌 '전시'로 기억하는 것은 실례가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숨결이 담긴 그 공간과 작품들을 더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작년 10월 가리봉시장의 한 쪽방에서 열린 <명자 영자의 같이 방>이란 전시를 소개하려고 한다.


구로에 놀러와, 칠공주 떡볶이 사줄게.


언니는 구로를 사랑했다. 마치 자신의 몸처럼 구로를 아꼈다. 본인 소개보다 본인이 사랑하는 구로에 대해, 구로에 아직 남아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먼저 소개하는 언니였다. 언니를 생각하면 늘 구로가 떠올랐고, 구로에 가면 자연스럽게 언니가 떠올랐다.


구로에 대한 언니의 열정은 독립영화  <가리베가스>(2005)를 통해 처음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쪽방에서 살아가는 노동자 '선화'를 그리기 위해 직접 쪽방을 얻어 살았다는 언니에게 구로와 구로를 숨 쉬게 했던 노동자들은 오랜 친구이자 언니의 삶 그 자체였다.


재작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가리봉 오거리>(2015) 전시의 한 섹션을 맡았다고 해당 섹션의 스토리텔링에 도움을 달라는 언니의 전화에 처음 구로에 방문했다. 얼떨결에 언니를 따라 반나절이나 구로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되었다. 언니는 겨우 '떡볶이'로 꼬셔내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고 했지만, 언니와의 구로 여행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날 만큼 인상 깊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1. 구로를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의 기록

쪽방에서 진행된 전시 copyright by 노크노크

굴뚝이 '산업 성장'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골목골목 봉제공장이 들어섰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노동자들로 구로는 그야말로 '만원'이었다. 부지런하게 돌아가는 미싱처럼 한국 경제는 성장했지만 미싱을 돌리는 노동자들의 손은 피와 눈물이 마를 날 없었다. 부당한 대우 속에서 힘든 노동 속에서 '내일'이라는 희망을 꿈꾸던 노동자들에게 2차 산업의 쇠퇴와 함께 찾아온 구로단지의 변화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쪽방은 팍팍한 삶을 사는 노동자들의 유일한 쉼터였다. 하나의 집에 칸칸이 나뉜 쪽방에는 전국 팔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정착했다. 그들의 상에 놓인 수저는 한 벌이었으나 그들의 마음에 걸친 수저는 고향에 있는 네다섯의 몫이었다. <명자 영자의 같이 방>은 봉제 노동자들의 삶의 자취를 예술이라는 실타래에 촘촘히 엮어낸 전시이며, 오랜 시간 소통을 통해 완성된 봉제 노동자의 작품이 돋보이는 커뮤니티 아트로 노동자들의 안식처였던 쪽방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기억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 혹은 기록된 것을 기억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언니는 구로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기억했고, 기록했다. 극영화였던 <가리베가스>(2005)에서는 주인공 선화의 삶을 통해, 다큐멘터리 <수추르 여인의 추억>(2016)에서는 언니 스스로가 기억의 매개가 되었다. 언니는 기록하는 방식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김선민, <수추르 여인의 추억> copyright by 노크노크
김선민, <수추르 여인의 추억> copyright by 노크노크

수추르 여인상처럼 언니는 구로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들을 내내 아쉬워했다. 특히 구로 노동자들의 생활을 이어가게 했던 구로공단정수장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 했다. 사기업이 사들여 이제는 그 행보를 알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는데 다행히 민철홍 작가가 <구로공단정수장>(2016)을 통해 구로공단정수장의 멈춰있는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 남겼다. 쪽방에 있던 낡은 분홍 꽃무늬 벽지에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보였다.

민철홍, <구로공단정수장>(2016)_single channel video copyright by 노크노크
민철홍, <구로공단정수장>(2016)_single channel video copyright by 노크노크

언니는 인생의 실타래를 미싱에 넣고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들이 살아온 시간들을 존중했다. 노동운동을 하다 교도소에 끌려갔던 이들이 생일이 되면 서로의 팬티에 자수를 넣어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하얀 면 팬티에 삐뚤빼뚤 글씨를 적어놓은 벽면의 작품은 언니가 반드시 기억하고 싶어 했던 노동자들의 '정'이었고, 애환이었다.

실타래가 성처럼 쌓인 곳에 '노동'이라는 깃발이 꽂혀있다 copyright by 노크노크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낡은 쪽방의 벽 한 구석에는 곰팡이도 있고 장판도 많이 망가져있다. 언니는 날 것 그대로의 전시공간이 좋다고 했다. '노동'이야말로 예쁜 것이 아니라 힘든 것이었고 그 어떤 말로 포장을 해도 감출 수 없는 땀과 눈물이 동반되는 것이다. 제 아무리 '디지털단지'란 이름을 덧붙여도 '구로'는 노동으로 점철되었던 그 시간을 결코 씻어내지 못할 것이다.


2. 구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록

영자의 전성시대 섹션의 캡션 copyright by 노크노크

언니는 구로가 구로일 수 있게 하는 건 '노동'이라고 했다. 노동으로 평생을 살아온 노동자들의 삶은 하나의 예술 같아 기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명자 언니의 이야기, 영자 언니의 이야기를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하는 언니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전시엔 제삼자가 볼 때 예쁜 작품이 아니라 작가들이 가진 소중한 기억을 가장 작가답게 표현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언니의 표현을 빌자면 '주인'이 있는 전시였다.


전시 공간에는 구로에서 청춘을, 인생을 보낸 이들의 기록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나의 직업은 미싱사다
오늘은 지그재그 수놓아진 천을
가지고 옷을 만든다
지금껏 무심하게 일만 했는데
어찌 오늘은 단어와 내 살아온
삶이 비슷하냐
내리막길 꼭지 찍다 버벅거리며
힘겹게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나
어찌 나의 삶이 이 봉제 용어 같이
지그재그로 살아갈까

강명자, <지그재그>
구로 안에서 전전한 미싱공장의 자취를 담은 지그재그 지도 copyright by 노크노크

노동은 언제나 버겁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쉽지 않다. 식구가 늘어날수록 노동자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삶의 무게 속에서도 그녀들을 웃게 한 건 '가족'이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개인의 기록을 '노동'의 흔적으로 정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촘촘히 박힌 실처럼 밀도 있는 그녀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이해되는 것도 같았다. 일기장은 낡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있는 자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울컥! 찬찬히 다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의 삶이 담긴 일기 copyright by 노크노크
낡은 재봉틀과 오래된 탁상 TV copyright by 노크노크

이제는 낡아버린 재봉틀과 탁상 텔레비전은 그녀들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또 다른 매개가 되어주었다. 낡은 재봉틀에 빨간 털실을 감아 그 자취를 표현하고, 탁상 텔레비전에는 과거의 기록이 담겨있었다.

결혼 때 큰 언니가 지어준 이불로 완성한 지도 copyright by 노크노크

언니는 늘 구로를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구로를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 쪽방이라는 장소 선정부터 작품 하나하나에 언니의 생각이, 언니와 함께 삶을 나누던 미싱 노동자들의 생각이 정성껏 담겨 있었다. 이렇게 언니가 기획한 가장 언니다운 전시가 구로를 향한 언니의 마지막 고백이 되어버릴 줄은 난 꿈에도 몰랐다.

가리봉시장 copyright by 노크노크

아직도 난 언니와 함께 안개 낀 구로를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구로공단정수장을 지나 쪽방촌을 지나 가리봉시장에 닿는다. 무섭다고, 살인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몸서리치는 내게 '다 사람이 사는 곳이며, 거칠지만 나름의 정이 있는 곳이라고, 곧 너도 이곳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던 언니와 이제는 구로 아날로그 단지가 된 그곳을 향해 다시 걷는다. 언니는 일곱 명의 할머니가 옹기종기 모여 떡볶이를 파는 칠공주 떡볶이 집에 가서 떡볶이를 주문한다. 매일 가던 곳에 가지 않으면 할머니가 삐진다고 굳이 앉을 의자도 없는 곳에서 떡볶이를 먹는다. 특별한 손님이 왔으니 어묵까지 사준다는 언니가 날 보고 웃는다.


두 달 전, 내게 전화를 걸어 올해는 꼭 함께 작업을 하자던 언니가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 몸이 아팠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해 끝까지 편집 작업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이내 말없이 떠난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지난밤을 보냈다. 슬픔보다는 그리움이 크다. 오늘 장례식장을 다녀왔는데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


그녀는 구로를 사랑했다. 구로의 노동자들을 사랑했고 진심으로 아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잊지 않으려고 했던 '노동'이라는 구로의 숨결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녀를 기억해줬으면 한다.



故김선민

작품 

1) 감독 및 연출

가리베가스 (각본, 연출, 편집) 2005년

나선형 (프로듀서) 2004년

후애 (감독) 2004년

반세기를 넘어 (감독) 2001년

돌아보면 (각본, 감독) 2001년

이름 없는 들풀 (감독) 1999년

2) 편집 등

해빙 (편집) 2017년

머니백 (편집) 2016년

널 기다리며 (편집) 2016년

마피아 게임 (편집) 2013년

유구무언 (편집) 2008년

귀로 (편집) 2008년

밀양 (연출부) 2007년

어느 늦은 밤 (편집) 2005년

수상

2005년 제 4회 MBC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영화상

2005년 제 4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 작품상

2005년 제 7회 서울 국제 여성영화제 우수상

2005년 부산 아시아 단편영화제 후지필름상


인터뷰 - 발견! 여성 감독 기대주들 -김선민 감독 by 씨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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