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킨파크 내한공연
240928,인스파이어 아레나
나는 본투비 집돌이다. 내향적인 사람이자, 무계획의 p성향을 지닌 사람답게 밖에 돌아다니는 걸 즐기지 않는다.
좋은 점이 있다. 취미도 진득하게 할 수 있고, 내 일상을 충실히 보낼 수도 있다.
물론 밖에서 보면 재미가 없는 인생이지만.
그런 인생이 좋은 내가 오랜만에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친구에게 린킨파크가 내한을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1.
린킨파크. 어릴 적 내게 메탈이란 장르를 알려주고 기어이 그로울링을 하게 만든 밴드.
다 빼놓고 스펀지에 나왔던 몬데그린으로 유명한 밴드.
린킨파크는 어린 메탈 떡잎에 뿌린 비료 같은 밴드였다. 대중적인 라인으로 귀를 사로잡고, 보컬인 체스터 베닝턴의 스크리밍은 곡들의 에너지를 제대로 끌어올렸으며, 특유의 신나면서도 단순한 진행이 직관적인, 인터넷에서 락밴드 추천해 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밴드.
입문 밴드이기에 주야장천 린킨파크를 들었다. 1집 2집은 말 그대로 전곡이 명곡이라 하루종일 린킨파크 노래만 들은 적도 있었고.
나중에 다른 메탈 밴드를 들으면서도 좋고 나쁨의 기준이 된 밴드답게 나의 메탈관을 잡아준 밴드기도 하다.
물론 최근까지는 안타까운 일로 밴드가 해체에 가까운 활동 중단 중이었다만....
2.
린킨파크는 뜬금없이 여자 보컬을 뽑아서 복귀했다. 심지어 5집부터 시작된 실험적인 사운드가 아니라 3집까지 들려줬던 익숙한 뉴메탈 신곡과 함께.
아마 이번 월드 투어도 그 일환이었겠지.
사실 처음엔 가지 않으려 했다. 보컬 바뀐 린킨파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추억을 함께한 밴드는 체스터와 함께하는 밴드인걸.
처음 같이 가자는 친구의 말에 정말 오랜만에 린킨파크의 영상을 찾아봤다. 대체 어떻게 부를까.
명색이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같은 성별이 아니라 다른 성별이 노래할 때 생기는 차이점을 알고 있었기에 보컬적인 궁금증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남자 보컬의 스크리밍을 여자 보컬이 소화를 한다? 사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을 터인데....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새로운 린킨파크의 보컬은 제법 괜찮게 린킨파크의 곡들을 소화하고 있었다. 당연히 오디션으로 뽑았으니 잘하리라 생각하긴 했다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군데군데 음역이 달라 힘든 부분을 제외하곤, 정말 새로운 린킨파크가 돌아왔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3.
기대감.
어릴 적부터 린킨파크를 들었던 사람으로서 생기는 기대감.
어쩌면 세계적인 밴드의 부활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어떤 기대감이, 내게 티켓팅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티켓팅이라고 하기도 뭐 한 상당히 여유로운 티켓팅이긴 했지만.
다행히 두 자리다 성공적으로 예매에 성공하여 기분 좋은 시작을 했다. 그 후 공연 시작까지 여러 논란들이 있기는 했지만... 다소 아쉬운 일이지, 공연 자체는 정말 기대가 많이 됐다.
4.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일들이 있는데 가령 내게는 베드포드 재킷을 산다거나,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거나, 좋아하는 해외 가수들의 내한 공연을 본다거나 하는 일 등이 있다.
특히나 린킨파크는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실제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 가기까지 약간 현실 감각이 없는 느낌이기도 했다.
우와 내가 진짜 린킨파크 라이브를 본다고?
밴드 동아리에서 여러 공연들을 보러 가긴 했지만 이 정도 네임 밸류를 가진 밴드는 처음이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늘 소극장이나 야외 공연장이 전부였던 내게 아레나라는 장소는 상당히 놀라웠다.
거대한 멀티플렉스 같은 공간이 전부 공연장이고 당연히 그 안을 채우는 사람도 굉장했다.
외국인도 많았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우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건물 안에 들어가 있는걸 또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야구장 정도?
공연이 7시 반이었지만 우리가 실제로 도착한 시간은 4시. 공연 3시간 30분 전이었는데도 대기 인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굿즈도 판매를 하고 있었고 나와 친구의 1차적인 목표는 굿즈였다.
5.
굿즈... 기념품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이번 굿즈는 무려 13년 만에 찾아온 린킨파크의 굿즈...
우린 그 인기를 예상했어야 했다.
우리가 서쪽 입구로 입장을 했는데 그 근처에 있던 굿즈샵에서 시작된 대기줄은 동쪽 입구가 보이는 길목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레나 특성상 외관이 둥글다는 걸 생각하면 그 커다란 건물을 한 바퀴나 둘러서 줄을 서있었다는 말이다.
3시간 30분 전에...
놀랍게도 우리가 왔을 땐 이미 굿즈를 구매해서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대체 몇 시에 오신 겁니까...
그래도 우리는 낙관했다. 이미 굿즈 종류도 다 알려진 상태고 굿즈를 사려는 사람들이니 망설임 없이 빠르게 줄이 빠지지 않을까?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제법 빠르기에 아무리 늦어도 7시까지는 굿즈를 사고 팝콘도 좀 사고, 화장실도 느긋하게 다녀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7시 20분이 다 되어서야 굿즈를 살 수 있었다.
다른 건 다 팔리고 Lanyard 한 개....
이거라도 어디야 싶긴 하다만... 이걸 대체 어디다가 걸어놔야 할지.
6.
약속된 시간에, 이젠 힘들어 설 수 없는 스탠딩 석이 아닌 지정석에서 공연이 시작됐다. 제법 운이 좋게 무대와 가깝고 무대 장치와도 가까운 자리를 골라 구석구석 공연장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페스티벌에 익숙한 나는 앉아있는 게 제법 어색했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다 같이 일어나는 지정석 사람들 덕분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린킨파크를 듣진 않지만, 내재된 기억 속의 메탈헤드가 어? 하면서 노래를 받아들였다. 역시 공연장에선 베이스의 소리가 바로 반응이 오지.
인스파이어 아레나의 공연 설비는 참 괜찮았다. 그 넓은 공연장. 맨 앞도 아니고 살짝 어중간한 위치였는데도 쾅쾅 울리는 베이스와 박자 실수가 나면 들릴 것 같은 드럼의 사운드, 묻히는 듯 묻히지 않는 기타와 잔잔한 키보드. 그리고 이 모든 걸 뚫고 나오는 강렬한 보컬.
체감상 공연은 너무나 짧았다. 뭐 좀 들을라고 하니 멈춘 기분이었달까. 20곡이 넘는 세트리스트였던 것 같은데 하나같이 다 명곡들만 잔뜩 집어넣은 덕에 공연의 그래프가 매시매분 상향 그래프를 찍었다.
전체적인 기승전결은 있었지만, 잔잔할 부분도 아는 노래가 튀어나오니 쉽게 앉을 수가 없었다. 머쓱하게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앉았다가 한 1분 듣고, 아 이 노래! 하면서 일어나고.
노래 하나하나 그 부분 부분을 살펴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라이브에서 이만한 퀄리티를 뽐낸다는 점에서 린킨파크의 보컬 교체는 확실한 성공인 것 같다.
걱정스러웠던 스크리밍 부분 역시도 방구석 음악가의 기우였을 뿐. 새로운 보컬리스트는 스크리밍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며 친히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공연 도중에 이어졌던 플래시 세례나, 이름 호명이 어쩜 이렇게 감동스럽던지, 직장인이 되고 무뎌진 감성이 오랜만에 불타올랐다.
이만한 공연을 아직도 보여줄 수 있으니, 누가 린킨파크에게 감히 퇴물이란 말을 꺼낼 수 있을까.
7.
공연의 감상은 늘 그렇듯 흐릿한 기억으로 남는다. 다만 강렬하게 남아있는 건, 그날의 감정, 느꼈던 희열,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던 에너지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나왔던 롤드컵 오프닝, 노래 자체는 너무나 훌륭했지만 복잡한 팬들과 리스너 입장에서 논란이 일어났었다.
이스포츠도, 메탈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 어느 편에 서기 난감한 문제였는데 결승전 린킨파크의 공연에서 호평이 이어진 것을 보면 다행히 논란들이 조금 사그라든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논란들을 보며 한편으론 이제 막 다시 시작하려는 린킨파크에게 제동이 걸리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결국 그들이 보여주는 에너지와 강렬한 공연이 논란을 돌파할 원동력이 된 것 같아, 롤드컵 결승을 보며 새삼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앞으로도 그들이 보여줄 왕관의 무게에 기대하며.
Ps. 제오페구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