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글을 나름 쓰는 편이다. 학생들을 위한 예시 자료로 다양한 글을 쓰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학생들의 연극 대본을 쓰기도 하며, 가장 좋아하는 건 시 쓰기다.
따분한 공문이나 계획서는 키보드로 쓴다. 효율적이어야 할 글은 종이에 쓰다간 수정도 어렵고 다시 타이핑하는 고생이 있으니까.
때로 예술가가 되고 싶은 날엔 집에서 뒹구는 종이를 찾는다. 필기구는 뭐든 좋다. 지워져도 좋고, 지워지지 않아도 좋다.
1.
나는 지독한 악필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글을 쓰는 게 직업은 아니지만 필연적으로 시험을 봐야 하는 교사인데도 그렇다.
교정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학생 때는 필사도 했고 나름 정자로 쓰기 위해 노력은 기울였으나 입대 후에 다시 글을 쓰면서 놀랍도록 빠르게 원래의 악필로 돌아갔다.
나쁜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는데, 나의 악필이 습관이라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어진 지독한 습관인 셈이다.
세상에 못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요즘 최소한 식별은 가능한 정도로는 글을 쓰려 노력한다.
2.
컴퓨터는 그래서 좋다. 소통을 위한 글을 쓰기에 최적화되어있다고 할까. 컴퓨터라고 하면 뭔가 소통 단절의 느낌이 나는데 실제로 일할 때 자판을 두들기는 걸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컴퓨터는 놀라운 소통 기구다.
내용만 확실하면, 적어도 내 글이 잘못 읽혀 오해받을 일은 없으니.
물론 너무나 똑바르고 올바르기에 가리고 싶은 나와 대화를 할 땐 컴퓨터는... 그리 사용하고 싶은 도구는 아니다.
조금 뭉개지고, 알아보기 힘들어야 내가 더 잘 보인다. 때로 글씨체에서 느껴지는 감정도 있다.
3.
종이에 쓰는 매력은 다양하지만 나는 특유의 글맛에서 나온다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걸 찾자면 옛날 책들의 투박한 멋이 있을까.
옛 서적들을 읽을 때 느껴지는 정취는 옛 타자기로 쓰인 예스러운 글씨체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투박한 글씨, 살짝 어긋난 조형미, 번져버린 잉크, 뭔가 애매하게 넓은 틈. 군데군데 읽지도 못할 한자들에 달린 주석들.
커피 대신 가배차를 마시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읽기는 불편하지만, 청바지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죽 부츠를 즐기는 사람이 고작 읽는 게 불편한 정도로 고개를 돌릴까.
4.
나는 내 글씨체로도 글 맛을 느낀다.
삐뚤 하고, 지저분하고, 얼핏 보면 의미 없어 보이는 낙서 같지만 거기엔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뭔가 많이 급했든지, 때론 글을 적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든지, 고등학생 시절엔 팔목이 아팠든지.
글씨체가 달라진 이유를 떠올리면 그때의 감각이 더욱 잘 느껴지는 기분이다.
가끔 열심히 쓴 글이 있으면 그때 왜 이렇게 적었는지 이유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때로 번진 글씨가 있으면 다른 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같이 보인다. 아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던 때가 있었구나.
5.
난 군인일 때도 글을 썼다.
일과 시간 중엔 다른 짓을 할 수도 없고, 병과 특성상 대기 시간이 길었던 터라 시간을 죽이기 위한 목적이 반.
군인이 되고 혼란스러운 정신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이 절반.
항상 장갑을 끼고 글을 적은 터라, 군인 때 쓴 글은 울퉁불퉁한 요철감이 크다. 좁은 수첩에 글을 적다 보니 억지로 작게 줄인 글씨가 그 당시 내 존재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글 내용도 낭만적이거나, 때론 비관적이고, 슬픈 내용이 많았다. 원래 갇히면 부정적으로 변하는 법이다. 아니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든지.
계급이 올라갈수록 내용에 낭만이 가득 차는 걸 보면 군인이었던 나는 절망적이었다가 희망적으로 변화하는 입체적 인물상인 모양이다.
6.
학생 때 썼던 글들을 살펴보면, 창의력이 고갈되다 시피한 지금과는 달리, 샘솟는 온천수처럼 제법 창의적이고 이상한 표현이 가득했다.
이때의 나는 달리는 걸 상당히 좋아했는지 별의별 것들을 달리도록 만들었다.
시간이라든지, 눈길이라든지, 이때의 나는 상당히 바빴던 모양이다.
글에도 의미를 담으려 한 흔적이 보인다. 아 나는 마디마디에 의미를 담을 거야.
아마 김지하 시인의 새봄을 처음 배웠을 때인 모양이다.
그 뒤에 쓴 글들은 유음 활용의 빈도가 높아진다. 말이 부드럽고 어미를 몇 번이나 고쳐 쓰고, 이 즈음해선 모란이 피기 까지는을 배운 모양이지.
내 2번째 시집 끝자락을 보면 수식어도 없고, 상당히 건조한 말들이 모여있다. 아 이때쯤 헤밍웨이를 봤던가.
만연을 버리고, 한껏 간결해진 이때의 나는 두려움이 컸던 모양이다.
모두 내용을 참고하기도 했지만 글씨체에도 드러나 있다.
글을 치장하던 시기엔 휘날려 쓴 것들이 많고, 의미를 담으려 한 시점엔 정자체로 쓰려 노력한 것 같고, 부드러운 글을 쓸 땐 손목이 돌아가는 게 느껴지는... 마치 한 줄 쓰기를 하듯 이어진 글씨체였고, 손목이 아팠던 고3 말 시기엔 뭔가 획을 덜 쓴 듯 글자가 조금씩 잘려 있었다.
때려 맞춘 것이긴 하지만....
아 그래도 글씨체가 조금씩 바뀌어왔구나.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악필이구나.
7.
요즘 나는 도구에 구애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글을 어디다 쓸지 보단, 어떻게든 글이라도 써야지... 하는 필요에 의한 일이다.
미약한 감상이라도 남겨둬야지.
활자를 쓰며 고민하던 시간이 즐겁던 그때로.
언젠가는 지금의 글씨가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