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순히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가 되고 나서 충동구매가 늘었다. 필요 없는 옷을 사기도 하고, 때로 그다지 입을 것 같지 않는 옷들도 몇 벌이나 사기도 했다. 이유는 대게 값이 싸거나, 언젠가 꼭 사고 싶었던 옷이란 게 그 이유였다.
1.
월급이란 단어가 주는 안도감과 스스로에게 느끼는 만족감 뒤로, 곧이어 날아오는 수많은 고지서와 지난달의 내가 저지른 실수들은 그 얄팍한 안도감 마저 잘근잘근 씹어먹는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월급은 나의 양식이 되어야 하고, 품위가 되어야 하고, 집이 되어야 하는데.
난 내 월급을 큰 솥에 넣고 곰탕처럼 푹 고아 먹어야 한다. 맛이 없어도, 매일 메뉴가 같아도 먹을 수 있고 따뜻하다는 것을 감사히 생각하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공무원의 월급은 안락한 미래를 위해 대부분은 디지털화되어버리고 실물로 눈앞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물론 나는 옷을 좋아하기에 그 대부분을 옷으로 남겼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윳돈은 대체로 옷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주의할 것은 역시 충동구매다.
값이 싸서. 그냥 사고 싶어서. 가장 나쁜 건... 그냥 돈을 쓰고 싶어서.
2.
인터넷은 투명한 선물 상자와 같아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물건의 가치는 아주 짧은 숫자 몇 개로 이뤄져 한창 나의 노동력을 과신했던 날엔 그 숫자가 얼마나 별 볼일 없고 심지어는 아주 헐값 같았는지.
통장 잔고로서 그 돈이 가질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원가가 30만 원이라는 옷이 10만 원이 되어 있고, 제법 유명한 브랜드의 40만 원쯤 하는 옷이 8만 원가량으로 올라와 있고.
숫자에 미쳐서, 정작 그 옷이 그만한 가치를 가진 옷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산 옷들은 대체로 한 번. 많으면 두 번. 이 이상은 없었다. 그 옷들은 매장에서 한 번 정도 입어보면 나의 필요와 딱 맞는 옷들이었다.
3.
나이를 먹고 여전히 자가 없는 직장인이 되고 나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불안이 커지면 자연스레 소비가 준다.
소비가 줄면, 낮아진 금리 속에서 어떻게든 돈을 불리려 하는 투자자처럼 내가 아깝지 않을 옷을 찾게 된다.
누군가에겐 아주 재미없고 따분한 시간 낭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이 나의 가장 활동적인 취미이니. 이 즐거운 탐색은 내 충동구매의 끝과 함께 시작된 또 다른 소비 습관인 것이다.
요즘 내가 옷을 사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필요할 것.
2. 정품일 것.
3. 나와 잘 어울릴 것.
4. 보관 및 관리가 편할 것.
5. 10년이 지나도 내가 입을 수 있을 것.
5가지. 세세하게 따지면 훨씬 많겠지만 내가 잡은 대원칙은 저 5가지다.
저 악랄한 다섯 가지 기준을 넘어서야 내 탐색은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4.
필요하지 않은 옷은... 말 그대로가 필요가 없다. 가령 산에 갈 일이 많지 않은 내게 고기능 등산복은 필요가 없고, 수영을 즐기지 않은 내겐 고기능의 수영복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리 예뻐도 과하면, 우선 결제를 멈춘다.
정품은 내 실낱같은 자존심이다. 짝퉁. 멋진 말로 레플리카. 뭐... 그런 것들을 구매할 수도 있고 만족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추구와는 다소 맞지 않는다.
나와 잘 어울리는 건 내 체형이 옷 입기에 맞지 않는 체형이란 걸 깨달은 뒤에 추가한 내용이다. 예쁘다는 옷들이 많았지만, 내 몸뚱이와 와이드핏은 베스트는 아니라 제외가 된다.
보관 및 관리, 아끼는 맨투맨을 아무 생각 없이 세탁기에 돌리다 2달 만에 날려먹은 일이 있었다. 생각 없이 빨다 보풀로 망가진 바지는 어떻고. 그 덕에 내 옷장에 울은 없다.
그리고 10년 뒤에도 입을 수 있는 것. 무난한 옷이란 말도 되지만, 언제 입어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을 안정자산이란 말도 된다. 옷이란 소비재이니 만큼 가능한 감가가 적은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다.
매번 옷을 볼 때마다 기계처럼 저 기준을 들이대니, 쇼핑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나름의 취미 생활이고 1년에 몇 번 없는 일이니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다만 시간이 길어진 만큼 거기에 쓰인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게 되어 또 충동구매에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주변에 백화점도 아웃렛도 없는 지방에 사는 나는 옷을 사기 위해 1시간이나 2시간 동안 운전해야 하고 옷을 둘러보는데 또 3시간 정도를 써야 한다.
대충 환산해도 5~7만 원 되는 인건비가 쓰이는 셈이다. 와중에 드는 식비는 별도에 교통비까지! 옷 한 벌 보는데 10만 원이라니.
억울해서라도 한벌 정도 사야 하지 않을까?
5.
모든 일이 그렇듯 쇼핑도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좋은 옷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 내 엄격한 5가지 기준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론 가격이 지나치게 높을 수도 있다.
이렇게 공치는 날엔 상쾌함 보단 공허함이 앞선다.
이렇게 했는데 아무것도 없다니. 칼을 뺐으니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을까.
난 새로운 형태의 충동구매와 마주하며 끝없는 합리화와 마주했다. 기준을 어겨도, 때론 너무 비싸도, 내가 이 옷을 사야 할 이유를 역설하는 공격수인 나와 소비를 필사적으로 막는 골키퍼인 내가 스치면 치명상인 대담을 초단위로 나눠가며 고민했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달은 바로는.
그렇게 이겨서 산 옷이나.
그냥 충동구매한 옷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6.
내 충동구매는 아주 느릿느릿하다. 충동적이라곤 하지만 나름의 이유를 갖추었고 따지고 보면 그리 충동적인 구매가 아닐지도 모르는 구매다.
그럴 때마다 난 마치 사랑에 빠지듯 구매했던 옷들을 떠올린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눈에 보이는데 들어가서, 별생각 없이 둘러보다가 우연히 눈에 착 들어온 옷.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라봐도 5가지 기준을 무슨 높이뛰기 선수처럼 넘어버리고, 가격 조건은 훌륭하며, 살 이유 대신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반사적으로 떠올리려 애쓰는 옷들.
충동구매를 하기 싫어서 만든 기준 때문에 충동구매를 하게 되는 걸 막기 위한 충동구매 방지법인 셈이다.
7.
물론.
가끔은 충동구매도 나쁘지 않다. 오래 보아야 예쁜 것들이 있듯이. 대게는 옷도 그렇다. 나조차 모르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충동으로 잃어버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어째 옷을 사면 살수록 의심만 늘어나는 것 같다.
고작 옷하나 사는 일에 지나친 노력인가 싶기도 하고...
하... 또 그렇게 운명처럼 만나는 옷이 있을까 그 순간을 잊지 못해 계속 쇼핑하러 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충동보다 운명적인 구매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