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해외 여행은 참 많이 보편화가 되었다. 아직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았단 소리를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설마 아직도 해외에 못나가본 사람이 있겠어? 놀랍게도 그게 나다.
1.
여행을 즐긴 기억은 딱히 없다. 우리 가족은 항상 바쁜 자영업자였고 여행을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할 수가 없었다. 내게 여행이란 가족들과 차안에서 나누는 대화였고 가끔씩 바뀌는 창밖에 풍경 정도.
내 피부는 달라진 습기를 눈치챌 만큼 예민하지도 않았고 내 후각은 달라진 향을 구분할 만큼 발달되지 않아서.
여행이란 평소와 비슷하지만 차를 많이타고 피곤한 것. 으로 귀결되었다.
자연스레.
겪은 여행이 이렇다보니 딱히 뭔가 하기 위해 나간 일은 잘 없다. 옷이 젖는게 질색이라 수영도 잘 안나가고, 돈을 내고 고생해야하는 액티비티도 질색. 절경을 감상하러 가는 일은 축축한 이끼냄새 뿐이고, 처음보면 좋았던 폭포도 질린다.
먹거리가 다양한게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아니 어차피 다 같은 한국인데 뭐가 그리 특별할게 있나 싶다.
그래서 국내여행은 사절.
그럼 이제 남은 것은 해외인데...
2.
해외여행에 대한 어딘가 아득한 거리감은 뭐랄까... 옷을 한 번도 사보지 않은 내가 랄프로렌에 들어간 것과 비슷하다.
너무 예쁘다고 하는 것들은 어딘가 어정쩡하고, 가격은 또 왜이리 비싼 것인지, 심지어 설명도 대게는 알아보기 힘든 외국 사람의 착장 뿐이다.
입는 사람은 랄프로렌만 입지만, 그런 사람들의 리뷰는 항상 어딘가 편향적인 느낌이다.
랄뽕과 여행뽕의 그 묘한 느낌.
그래서 대학생 때도 난 해외여행을 경계했다. 달리 말하면 충분한 돈이 없었다. 그 당시 난 주기적인 알바로 60만원 정도를 한달에 벌었고 학기에 한번씩 100얼마쯤 받는 나름 괜찮은 알바를 했는데, 내가 1년에 벌 수 있는 총액은 720만원에 200만원을 더해, 920만원. 다달이 받는 용돈 30만원 가량을 더하면 약 1300만원 정도였다.
대체 이 많은 돈을 난 어디에 썼을까. 저축하는 돈을 빼면 지금보다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이때 나는 확실히 경제 관념이 부족했다. 더구나 당장 버는 돈이 제법 충분하니 열심히 알바를 해야겠단 생각도 안했다. 참으로 패기 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지만 이때 나는 노래에 절반 정도는 인생을 갈아넣고 있었기에, 후회가 막심하다.
매달 버는 돈도 데이트 하랴 밥먹으랴 술먹으랴 해서 족족 다 쓰고, 모자란 돈은 급하게 어딘가에서 빌리고 또 다음달에 갚고 그랬는데...
그러다보니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니 꿈꾸지 않았다는게 맞다. 바라지 않았으니 이뤄지지도 않을 수밖에. 대신 서울은 정말 자주 갔다.
거의 뭐 달에 몇번은 서울이었지. 인서울 권으로 대학을 가지 못한 자의 서러움이었을까.
3.
그렇게 아끼지도 않고 좁은 내식견을 더욱 좁게 만들던 중, 어찌어찌 임용고시를 보고 군대를 간다. 갔다오니 어느새 20대 중반. 완전한 독립을 한 나는 당연히 집 보증금도 내 손으로 해야했으니 군인 때 모아둔 돈은 전부 보증금으로 들어갔다.
군대 가기전 했었던 기간제 교사로서의 월급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보증금으로 들어갔다. 전역 후엔 급히 차를 사게 되고 군 기여금을 내야했기에 당시 나에겐 제법 부담되는 큰 금액을 빌렸고 1년 만에 갚느라 허덕이며 살았다. 그렇게 빚을 갚고 1년은 명품에 미쳐서 명품을 사고...
그 이후엔 내게 얼마 남지 않은 결혼 적령기를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 나이대에 잘모은 사람처럼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정말 한달에 헬스비를 제외하고는 쫄쫄 굶을 정도로 돈을 모아야 했고... 여윳돈으로 나는 어떻게든 명품 옷을 사야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해외여행 경비를 지나치게 높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여행한번에 70을 태워? 그 돈이면...
새로운 경험도 좋고 알게 되는게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선 단가가 안맞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보다는 방어적인 태도가 되는 내가 여행지를 편하게 둘러볼 것 같지도 않고.
해외여행도 조기 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
4.
다만 요즘 드는 생각은 그렇다. 해외 여행을 못가본 사람은 좀 재미 없다란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좀 두렵다.
나이들고 역시 사람은 사귀어 봐야지하는 낭만적인 흐름 보단, 다소 편향적이고 좋은 사람을 놓칠지라도 편견이란 좋은 거름망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데 내가 그 거름망에 걸러지는 것이 두렵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 만나는게 피곤하고 귀찮고 최소한으로 하고 싶은 사람에겐, 그러니까 나같은 사람에게 나는 '재미 없고 모험심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
물론. 놀랍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맞지만. 그래도 초면부터 '재미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웃기기 좋아하는 o형인 내겐 참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5.
뒤늦게라도 여행을 가보려 노력을 한다. 최근엔 제주도에 한 번 갔다왔고. 해마다 해외여행을 다니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얻어 값싼 비행기 값을 얻는 법을 배우고 있다.
출입국 관리소엔 어지간한 한국인들 보다 많이 가봤을텐데 허허.. 이런 내가 역설적이게도 몇년전까지는 외국어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니.
해외여행을 가지 않으려고 발악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다. 정말 모든 일에는 때가 있었고, 나는 그 때를 부드럽게 놓쳐 버린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나가면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지출을 줄이고 웅크리며 사는 내게 그게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여행 한 번 못다니면서 모은 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결국 한 번은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일텐데.
재테크로 많은 돈을 모아본 적도 없고, 해외여행도 한 번 못해본 내가 제일 어중간한게 아닐까.
결국 나는 오늘도 정보만 잔뜩 취합한채 결국 선택하지 못한 대가로 집에서 기타나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