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함에 대해

by 낙낙

최근 연차가 많아지며, 막막함에 대해 생각한다. 속이 보이지 않는 물가에 손을 뻗어 저어가며, 진주를 찾아내는 것 같은 느낌.


할 수야 있지만. 조금씩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1.


해본 적 없는 일은 내겐 두려움이다.


걱정이 많고, 뭘 하든 대충 하긴 싫고, 일머리가 나빠 몸을 갈아 넣는 나는 일을 할 땐 효율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라서, 좀 더 나은 방법을 위한 끊임없는 고민을 추구했다.


다만, 끝없는 고민은 자연스레 일처리가 늦어졌고, 머뭇거림과 망설임은 자칫 게으름으로 의심을 받기 좋았다. 일단 지르고 봐야 하는 스타일과 상극인 듯 아닌 듯. 일단 저지르고 봤던 작년과는 달리, 같은 일을 두 번 하기 싫어서 대충 1번 하고 반 정도 더할 노력을 매 순간 기울였는데....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니, 어느샌가 맥이 풀렸다.


노력이란 적절한 보상 없이는 이어지기 힘든 일이고 그것이 내 생업이라면 당연한 결말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잠깐의 여유와 쉼을 가질 수 없는 공간에, 여유를 가져오려는 시도는 내게 주어진 일말의 집중도 날려버렸다.


5년 가까이 지낸 직장이, 나 빼고 다 변하니, 이젠 내가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가장 힘든 것은 뭐 하나 물어볼 곳도 없고, 뭐 하나 고민을 나눌 사람도 없다는 것.


그러려니. 그냥 잘하겠거니 하고, 바라지 않던 책임감을 등에 업고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실. 그냥 다 던지고 1년 있다 가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근 1달여간은,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2.


도전이라는 것은 참 아름답다. 다만 도전이란 결국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일과를 따라가는 것도 벅찬 내게 새로운 시도라 함은 추가적인 업무를 뜻했다. 새로워진 근무환경. 전례 없는 새로운 지침들. 본분을 잊게 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환경.


모든 것들이 참 막막하다. 그냥 하면 된다길래 지침을 찾고, 지침대로 하면 일처리가 정석적이라며 조언을 듣는다. 머리 아프게 설명서를 보고 해도 어려운 일을 설명서 없이 진행하라는 이 역설은 대체 무어라 해야 할지.


바뀐 사람은, 또 새로운 스타일이다. 그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알기 위해 질문하면 그건 그대로 다시 추가 업무가 된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지침을 찾기 시작하니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장점이라면 해왔던 일이라 대충 단어는 눈에 익는다는 것. 하지만 알면 알수록 단어에 담긴 뜻들은 오묘해진다.


당장 할 일이 많은데, 여유가 전혀 없다. 일이 끝나지 않는다. 매일 새로운 일이 발생하고 업무가 겹쳐진다. 이쯤 되면 사실 뭔가 구조적으로 잘못되고 있단 것이다.


3.


문제점을 인지했으니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원인이 한두 개가 아니다. 모든 게 바뀐 환경. 새로운 사람. 물리적 공간을 빼고 모든 게 다 바뀌었으니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나질 않는다.


중요치 않은 업무를 하나둘 던지다 보니 이젠 정말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만 역시 이 바쁜 시기에 업무를 던진 사람이 한둘이 아닌 듯, 늘어난 기간에 한숨을 돌리고 다시 갯벌 속을 걷는 여행을 시작하노라면, 언젠간 끝나겠지.. 끝나겠지...


결국. 이번 달도 딱히 뭔가를 변화시키진 못했다.


4.


막막함의 벽은 두껍고 무너지지도 않아 보인다. 이 비슷한 기분을 언제 느꼈더라. 아 맞아. 몬스터헌터를 할 때 느꼈었지.


처음 잡아본 창화룡이 얼마나 어렵던지, 맞아가며 트라이하는 게 답도 없어서 공략을 찾아보고 영상도 돌려보고 친구도 불러보고.


어찌어찌 공략을 성공했지만 대검 유저인 내게 불을 뿜어대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용은 그야말로 막막함 그 자체였다.


물론 조금씩 배우다 보면 어느샌가 이 불합리해 보이는 용의 약점도 알게 되고 러키 펀치가 얻어걸려 간신히 수렵했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원하는 장비를 만들기엔 턱 없이 부족했고 중요한 소재는 나오지도 않았지만 그저 수레를 타소 반의 반토막이 된 골드를 벌어 좋았었다.


넘길 수만 있다면, 그저 멈추지 않고 오를 수만 있다면.


막막함은 거대한 사다리처럼 나를 더 높은 단계로 데려다주려나.


5.


사람에게 애석한 구석이 있다면, 하필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뛰어난 머리가 있다는 것이다. 왜 우주란 것이 생겼을까.


저 별은 왜 저기 있을까.


사람이란 것들은 스스로를 막막한 곳으로 밀어 넣곤 끊임없이 고통받으며, 별이란 것을 관측하고 최첨단 위성을 쏘아, 우리에게 내재된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있다.


사람들. 참 겁도 많다.


그래 생각해 보면 나도 참 겁이 많은 성격이다.


잘 몰라서 느끼는 두려움들. 두려운 곳을 피하는 성격. 스스로가 닫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겁 많은 성격이 나를 점점 고립시키고 그나마 내게 날아온 밧줄을 싹둑 자르고 있었다.


아. 막막하다.


그저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기 어려워 뱉는 한숨.


어중간하게 자라 버려서 어른인 척하지 않으면 두려운 겁쟁이의 방어술.


그래 앞으로 나아간다면 막막 보단 도전을 해봐야지.


끝없이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도 평생 벌이라 생각했다면 돌을 차마 밀어 내리진 못했으리라.


오늘도 참 막막한 하루였다.


누군가 미련하다고 조언해도. 어차피 도망쳐봐야 돌에 쫓길 테니.


막막이란 뻘에 몸을 누이고, 여유롭게 머드팩이나 좀 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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