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나. 이제는 갈 일 없는 나의 고향.
1.
상전벽해란 말이 있다. 세상 천지, 불변하는 것은 없다고 하지만. 고향의 변화는 이유 모를 쓸쓸함을 가져다준다.
올해로 고향을 떠난지 10년이 된다. 비정기적이나 때로 들리고 했던 고향은 참 텅텅 비어있었다. 활력은 없고, 조금씩 기운 자체가 늙어간다는 것을 느낀다.
지방 소도시의 결말이라고 하면 애처롭긴 하지만 언젠간 내 고향이 없어지는 날이올까 한편으로 두렵다.
2.
내 태생은 시골 촌놈. 편의점 하나 없는 논밭에 둘러싸여 장날이면 찾아오는 호빵과 호떡에 눈이 돌아가는 아이. 태운 땅콩 맛보려고 200원 동전 들고 종이컵 한컵 땅콩을 가져다 먹던 아이.
천천히 변해가는 고향이 싫증나고 떠나고 싶던, 치기 어린 시기를 지나. 이젠 고향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내가 있다.
내 고향을 벗어나 버스타고 40분쯤 달리면 나오는 시내. 정류장 앞에 마련된 커다란 학교와 맞은 편의 마트는 내 놀이터였다. 빵하나 사먹고 조금 걸으면 pc방이니 노래방이니, 심지어는 그 당시 항상 먹고 싶던 롯데리아가 있었고, 좀 더 내려가면 오락실, 서점, 가벼운 지갑으로도 가끔은 찾아갔던 값 싼 파스타집.
어리고 철 없던 나는 그런 소도시의 느긋함이 좋았다. 박자로 치면 4분의 4박자고 속도는 보통 속도. 그저 계절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꽃이 예뻤던 정류장 아래의 벤치.
어딜가나 논이 었던 내게, 시내는 마치 어딜가나 놀거리가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풀떼기나, 또랑, 흙더미가 지겨워지는 시기였다.
3.
막상 시내에 살게 되었을 때는 딱히 이 도시를 즐긴 기억은 없다. 주기적인 외출이 필요 없었던 기숙사생. 당장 눈 앞의 답을 쫓아야하는 시기. 나는 그 때 고치였다.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다양한 순살 치킨집. 빵집. 음식집 야식집. 시험이 끝날 때마다 찾아갔던 국밥집, 고기집. 그냥저냥 편안했다. 모든게 참 새로웠고 도시의 경험을 쌓아가며, 편의점이란 곳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나름 적응을 해나갔다.
그 중 가장 신기했던 건 역시 끝도 없는 원룸촌이었다. 저 작달막한 집에 누가 살게될까. 그게 나인줄도 모르고.
촌놈이 시내에 익숙해지기까지 3년. 간신히 해볼 것만 다 해본 후에 대학으로 떠났다. 자주 와야지 하고 떠난 것은 아니지만, 그 뒤로 고향은 내게 간헐적으로 찾아왔다.
4.
가끔 돌아올 때면, 촌구석은 참 어찌나 재미가 없던지. 시골짝의 자연은 더이상 내게 영감을 주지 못했다. 밤마다 별을 보러 산책을 다녔던 건 어쩌면 작은 반항심에서였을까.
고향은 별이 참 많았다. 남겨둔 기억 덕인지, 나를 위해 빛나주었던 사람들인지. 3대가 살며 쭉 봐왔을 하늘은 변치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어딜가나 뜨내기처럼 느껴졌던 나의 대학 시절엔 그랬다. 아 그래도 고향에 가면 밥 정도는 굶지 않고 살 수 있을텐데. 그런 익숙함에 젖어 텅빈 고향 땅이 얼른 채워지길 바랬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고향은 올때마다 참 조용해졌다. 장날도 시들시들하고, 고정적으로 자리를 잡던 상인들도 적어졌다. 거리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득했고 호빵이나 호떡도 없었다.
가끔 가다 보이는 두어명의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얼른 자라나려는 것처럼. 어쩌면 그 아이들도 고향에 싫증이 난걸지도 모른다.
5.
마을이란 것이 참 고달픈게, 남아있는 사람들 만으로 감당이 안되면 결국 관광객들에게 의지해야하는 순간이 온다. 돈이란게 참 묘해서 잘 도는 것 같다가도 어느샌가 뚝 멈춰있는 것을 보면.
텅빈 거리를 볼 때마다 참 저들이 써줄 돈이 이 활기를 얼마나 더 가져다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발령 받은 공무원이 아니라면 세상 그 누가 이 마을을 아름답다 생각할 수 있을까.
떠날 때가 목전에 차오른 마을은 참 아름답다기 보단 백지처럼. 언젠가 다시 차오를까 싶으면서도, 너무나 슬픈 연명치료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 곳이 나의 고향인가. 참 낯설어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아 이제 내가 살던 곳은 변화마저 멈춰버렸구나. 그냥..그렇게 멈춰있다 조금씩 지워져가는구나 싶었다.
6.
오랜만에 찾은 공간은 참 외롭고 쓸쓸하여, 눈을 감아도 훤했던 그 곳은 텅 빈 것처럼 아려왔고, 변하는 추억이 아니라 없어지는 추억을 잡고 있는 나는 문득 거리뷰를 켜봤다.
어릴 땐 사진기도 없어 찍어놓지도 못했는데.
다행히라고 해야하나. 거리뷰에라도 남아있어 고향을 추억했다. 자주 가던 거리, 골목, 그저 남아있기를 바라며 모처럼 추억에 잠긴다.
나만은 아니겠지. 어딘가 없어지고 사라진 고향을 품에 삼키고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
10년 뒤엔 이름이나 남아 있을까.
혹여 인적 드문 무인지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럼 내 고향은 커다란 무덤이 될까?
이젠 정말 발붙일 곳 하나 없는 뜨내기는 어색한 고향에 앉았다가, 어색한 길거리에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