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근무하는 곳이 학교라, 마주치는 학생들이 어려서 드는 생각인데 피아노를 배우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
한발짝 내딛을 때 수 많은 생각을 해야하는 사람이라 뭐 하나 배우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냥 가서 하면 되는데. 딱히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을텐데.
한 번의 체험은 쉬워도 이어가기는 어렵듯. 나는 일단 내딛으면 직진을 해야하기에 더 신중해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꽉 막힌 생각이 평생할 거 아니면 안배운다. 약간 이런 식으로 흘러가서, 내가 지속적인 관심을 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면 반 정도는 귀를 막게 되었다.
세상 초탈한 것처럼 보이고, 금전적인 일에 관심을 쏟지 않으면서 이 지루하고도 긴 인생을 채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게는 노래가 그렇고. 요즘은 기타가 그렇다.
2.
노래를 배우다보면 자연스레 같은 악기를 쓰는 발성에도 관심이 간다. 소리를 크게 내고, 멋지게 내는 걸 넘어 궁극적으로 건강하게 소리 내는 것을 목표로 근래엔 바른 발음을 좀 배우려고 하는데... 발음도 목소리라 소리를 내다보면 목이 아파온다.
그런 때를 대비해 교실에 있는 기타를 치곤한다. 물론 긴 시간 치지는 못한다. 드물게 바쁜 생활 중 10분 정도 시간이 남을 때, 학생들이 없을 때. 혹은 모두 다 퇴근하고 나 혼자 학교에 남았을 때 조금씩 친다.
집에서 치기엔.... 위험부담이 크다. 스트로크라도 연습하려면 약음기를 줄에다 끼우고 해야한다. 부드러운 스폰지가 달린 약음기가 줄에 닿아 소리를 최대한 줄여주긴 하지만 태생이 쇠줄인 기타줄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진 않다.
소리도 나질 않아서 집중해야 내가 무슨 음을 치는지 인지가 될 정도고 테크닉은 시도해볼 엄두도 안난다. 가장 좋은 건 일렉기타라도 사서 좋은 오디오 인터페이스에 연결해 헤드폰을 뒤집어 쓰고 연주하는 것이지만...
거주 공간의 크기가 작아 마찬가지로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어휴... 안될 이유만 찾고 있으니 뭐가 될 일이 있나. 나는 짧은 시간 기타를 치는게 제법 만족스러워 큰 불편함은 없다. 그리고 나름 집중해서 치기 때문에 연습량이 부족하단 것 빼면... 만족스럽다.
3.
어쩌다 기타를 치면 학생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아무래도 실제로 기타를 처음 보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고 집에 있어도 막상 배우는 학생은 드물기도 하고... 나도 중학생 무렵부터 치기 시작했으니.
학생들이 틀어달란 노래를 틀어주고 거기에 맞게 대충 주요 화음 3개만 쳐줘도 어떻게 한 것이냐며 신기해한다. 그 때마다 선을 긋는 것이 나는 절대 잘 치는 것이 아니며, 학원을.... 3달쯤 다닌 중학생 수준의 실력이다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자연스레 악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제법 표현 욕구가 많다. 수업을 해보며 느끼지만 아무리 조용한 사람이라도 드러내고 싶은 부분이 있다는 것. 나한테만 보여줘도 되고, 심지어는 혼자서만 들어도 상관 없는 그런 표현.
늘상 표현 영역을 가르치면서 정작 표현할 여지를 준적이 있었나 반성하면서.
4.
악기는 참 신기하다. 건드려도 소리가 나니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뭔가 나타낼 수가 있다.
마치 글을 쓰지 못하는 아이가 자모음을 따라 그리며 즐거운 것처럼. 낙서를 하는 것이다.
전 악기를 아무것도 몰라요라곤 해도,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8음계는 잘 알테니. 나는 우선 도만 쳐보라고 한다.
도는 많는 조성에 포함된 음이라 어떻게든 하나 걸리기도 하고... 설사 조성에 포함 되어 있지 않아도 '오 이거 완전 재즈 스타일인데?' 라고 말해주면 뒷걸음질 치다 얻어 걸린 것처럼 좋아한다.
결국 어느 정도 정해진 틀 안에서 돌아다니는 일이라, 같은 길을 갈까 걱정이 되는 것이지 틀린 길은 거의 없는게 음악이라 도를 치는게 지친 학생들은 금세 이런 저런 음들을 연주해본다.
5.
도 다음은 레가 아니라, 모든 음을 다 쳐보라고 한다. 순서도 상관 없고 코드톤도 괜찮으니 일단 쳐봐라. 그러다 하나 얻어걸리면 그게 멜로디다. 그러다 삘 받으면 왼손으로 도미솔이라도 쳐보고, 반주를 해나가면 그게 아주 간단한 틀이고.
그 다음엔 레#을 쳐보라고 알려준다. 자 이러면 나름 블루스한 느낌이 나고. 익숙해지면 마이너로 길을 살짝 바꿔준다.
어딜 갈지보다도 중요한 게 지금 내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아는 것이니. 학생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다른게 아니라 한 음을 치고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는 것임을 알고선 항상 조성을 알려준다.
23-56, 34-78.
간단하지만 조성을 가르쳐주는 간단한 방법이다. 거의 외우듯이 말하다 보면 사장조나, 바장조 같은 건 금방 익힌다.
6.
물론 이렇게 알려줘도 학생들은 금방 손을 뻗진 못한다. 만족스러운 음이 나오질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재미가 없어서인지.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음을 내는게 아니라 음악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라 말해줘도 즉흥 연주는 너무 어려운 모양이다.
아무렇게나 치는 재미에 빠져 한동안 기타를 치는데 열중했던 나로서는 참 아쉬운 지점이 아닐 수가 없다.
조금만 더 하면 학생들에게 또다른 표현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러다 어느 순간 기타를 친다는 학생들을 살피면 참 마음이 촉촉해진다. 날 따라 치는 건 아니더라도 그냥 나로 인해 악기를 연주하게 되는데 아주 작은 영향을 줬단 점이 교사로선 참 만족스러운 지점이다.
7.
요즘 학교에서도 이런 악기 연주에 힘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가장 간단한 건 당연히 리코더나 실로폰 같은 개인 휴대가 가능한 악기겠지만... 악기의 취향이나 연주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니까.
기타는 일단 가장 간단한 코드만 배우면 나머진 우겨넣기로 커버가 된다. 어려운 세븐스 코드나 나인 코드를 몰라도 얼추 오픈 코드만 알아도 반주란 것이 가능하니까.
수준이 오른다면 아르페지오 같은걸 해봐도 좋을 것이고 좀 더 흥미가 생기면 노래를 해봐도 좋고.
내가 이를 악물고 하려고 했으면 학생들에게 작은 기타 정도는 하나 줄 수 있었을 텐데....
뒤따르는 업무가 감당이 안되는 나로선 힘들다. 계획 좀 세우고, 설문도 좀 하고... 끝나면 보고서 좀 쓰고 정산서만 쓰면 되는데. 어유 하기 싫어.
8.
한동안 음악 담당 교사를 하면서 했던 일은 최대한 특이하고 묘한 악기를 사놓는 것이었다. 콩고 드럼이라던가. 구부려서 소릴 내는 클래터나, 카주. 이런 평소엔 잘 쓰질 않는 악기를 사놓고 연주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음악적 상상력이란 것이 참 묘하게도 배우질 않으면 정말 상상도 못할 소리들이 많아서... 일단 들어보는 게 났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양한 노래도 들려주곤 했는데 신기한 형식으로 만들어진 노래나 신기한 기계로 연주하는 노래를 들려줬다.
물론 내 제자들이 모두 음악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렇게 1년을 보내고 나면 아주 가끔 학생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찾아내는 경우가 있다.
악기에 묘한 걸 덕지덕지 붙이곤 뭔가 특이한 소릴 내거나 원래는 타악기인데 어떻게 해서 관악기처럼 소릴 낸다거나.
그리고 내가 가르쳐준 대로 어떻게든 도를 내려고 한다. '아 도부터 내야하는데' 아... 글로벌하게 '라'부터 내야한다고 가르칠 걸.
표현이 서툴었던 학생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묘하게 감격스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냥 뭔가에 빠져서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그런 것 같다.
그래 요상한 소리면 어떻냐. 네가 소리를 냈다는 게 중요하지.
전공을 하지 않아도 좋고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말하는 수단이 하나 더 생겼으면.
아 다음 학년도 땐 1인 1악기를 뭐라도 시켜야하는데...
뭔가 사업이라도 하나 찾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