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두서다란 단어를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불안 장애란 연관 검색어가 나온다. 정신의 각성은 일종의 불안함일까? 커피를 마시며, 타우린이나 피로를 풀어준다는 드링크를 마시며, 나는 나를 불안속으로 밀어넣고 있는걸까?
1.
직업이 직업인지라 불안이 많다. 오늘의 걱정이나 내일의 걱정도 그렇고 쓸데 없이 안정적이기에 찾아오는 불안도 있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처럼 나는 늘 걱정을 사서하는 편이라 기질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일상이 평화롭기만 하다면야 나도 마음을 놓을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모여있는 학교란 공간은 기본적으로 평화로울 수가 없는 구조다.
혼자서 평화를 찾는 것도 어려운에 다수의 속하면서 평화를 찾는다면 배려와 존중이라는 것이 얼핏 윤곽을 보이거나, 능숙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거나, 논리적으로 내가 좇아야 하는 것이 평화임을 넌지시 알고 있거나...
그걸 다 알면 어른이라고 부르겠지.
2.
평화가 깨지면 불안이 찾아온다.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나 미리 예상한 흐름이 아니라면 난 가장 먼저 당황한다.
당황하지 않은 척을 할수도 있지만 난 심지어 거짓말도 못한다. 덕분에 늘상 표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게 습관이 됐다.
교실에 서있는 제일 커다란 사람이 나라서, 내가 흔들리면 학생들도 흔들린다. 생각 외로 이 차이가 분명하므로 나는 늘 느릿하게 말하고 천천히 하려 노력한다.
역설적으로 저렇게 하려면 정신이 바짝 곤두서야한다. 내가 의식하지 않으면 무의식 속에서 불안함이 터져나오고, 막지 않으면 티가 나고, 티가 나면 불안함이 옮는다.
일종의 직업병인가. 아니지, 이건 어른의 특권 같은 것이 아닐까.
3.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자연스레 예민한 성격인 내게 불안이란 단짝친구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날 때놓은 적이 없다.
놀 때는 다칠까 겁이나고 평화로울 땐 사고가 날까 고민이 되고, 밥먹을 땐 체할까, 그냥 걸어갈 때도 차가 걱정이 된다.
그런 놈이 교단에 섰으니 참 묘한 시너지가 난다. 많이 좋아졌어도 늘 내게 버거운 일이 생길까 겁이난다. 교사가 짊어지기엔 참 우습지만 힘든 일들. 그런 것들이 불안하다.
그리고 난 여전히 이 불안함을 잘 숨기는게 어른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애써 웃음짓고 힘든 내색 안하려는 어머니처럼. 어른이 대단하단 건 별게 아니라 그게 제일 큰 것 같다.
그리고 그러려면 내겐 곤두선 정신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도 도움 없이 해내려면 좀 힘든 일이다.
4.
정신이 곤두서면 눈이 확 떠진다. 졸음이 달아나고 예민한 감각이 더 예민하게. 약간은... 행동거지도 좀 빨라진다.
일이 많아지면서 느낀건데 나는 보폭이 좁아 아주 쌩 난리를 쳐야 앞으로 가는 느낌이 난다.
정신이 곤두서면 미뤄놨던 일들도 떠오른다. 그리고 고민하다가 매뉴얼 좀 살펴보고. 이걸 어떻게하나란 생각에 고민에 빠진다.
행하는 것 자체는 큰 일이 아닌데, 이 행함의 근거가 중요하다. 법을 살펴봐도 애매한 구석이 많고, 적용 또한 알아서 하라는 게 많아서 그렇다.
적힌 것만 하면 되는데, 이게 그 적힌게 맞는지 애매하다.
결단이나 내릴 수 있으면 좀 괜찮을텐데, 그 결과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확신이 없고, 또 이 결과가 잘못될까 불안한 탓이다.
요컨데, 행동은 빠른데 판단이 느려 일처리가 느리다. 이런 일이 여러번 반복이 되니 확실히 정신에도 데미지가 들어왔다.
신경도 쓰지 않았던 도트 데미지였다.
고구마처럼 갉아먹혀 정신차려보니 뾰족해져버린 것이다.
5.
어느날 부턴가 카페인은 내 몸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가 됐다. 관성적으로 마시다보니 거진 매일 같이 두 잔 정도. 물에 희석했어도 투샷이었고, 900ml씩 2잔... 거의 2리터 가까운 커피를 마시다보니 사실상 일을 하기 전 커피 한잔은 루틴처럼 변해버렸다.
일이란 것이 맨 정신에 하기 힘든 일이 됐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커피가 없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지경이 되고 얼른 곤두선 정신이 되고 싶어 불안하다.
불안을 누르려고 커피를 마시다가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중독에 빠져서, 어느새 나는 있지도 않을 불안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6.
항상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24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니, 뭐라도 한 줄 배워야겠다 싶었고 일도 많이 해야겠고, 투자로 돈도 좀 벌어야겠으니...
요즘은 게임을 해도 시작 전에 목표를 정하고 시작을 해야했다. 테라리아 같은 오픈 월드 게임은 더더욱.
정신을 차리고 문득 생각하니 나는 이미 항상 곤두서있었다.
내가 언제 느슨해졌더라.
달리기에 가까운 1년이 마무리 되고, 달력에 덕지덕지 적혀있던 일정들이 하나둘 줄어 마침내 일주일이 비었을 때가 되어서야 자각을 했다.
7.
그냥 하루 잡고 아무것도 안했다. 근데 그냥 누워있으면 안좋다고 해서 근처 북카페를 찾았다. 앉아서 그냥 입을 막고 책을 좀 봤다.
목적 없이 그냥 재밌어보여서. 아 맞아 이게 중요했는데.
곤두선 정신을 아주 오랜만에 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썽이던 보일러 온도 조절기도 잠깐 내려놓고, 살찔까 걱정하며 억울하게 씹던 브로콜리도 잠깐 집어치우고,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는데 창가에 들어오는 눈부신 빛이 집에 누워 받는 햇빛과 다르게 느껴졌다.
하필 겨울인데도 따뜻한 날.
패딩을 입어 괜히 찝찝한 날.
오늘 저녁은 그냥 보이는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어봐야지. 애써 맛있게 먹으려는 노력도 잠시 접어놓고 눈길이 닿는대로.
몸이 노곤해진다는게 식후 혈당 때문이 아니라 여유 때문이란 게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