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2일. 일
일요일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맑게 갠 창밖을 확인하고 러닝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장마 기간 중 모처럼 햇볕이 드는 날. 달리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날씨다.
눈치 빠른 슈가는 산책을 나가는 줄 알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다 눈이 마주쳤다. 의아한 표정에, 간절한 눈빛. 차마 문을 닫지 못하고, 슈가를 안아 3층 순양 방으로 데려다주며, “먼저 간다, 슈가와 늦지 않게 달리러 오라.”라고 했다.
오늘은 15km를 달리는 날이다. 주말마다 10km, 15km씩 번갈아 달리기로 했지만,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계획을 지키지 못했다. 무형유산원 뒷길에서 몸을 풀며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 때마침 구름이 걷히며 맑은 하늘이 드러난다.
계획을 바꿨다. 오늘은 하프 마라톤이다.
내가 스트레칭을 하는 무형유산원 뒷길엔 사랑방이용원이 있다. 열 평 남짓한 작은 이발소. 일요일인데도 문을 열었다. 전주엔 72년 한자리를 지켜온 이발소가 전주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도 노포의 정취가 있다. 아마도 먼 데서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일요일 문을 연 걸 테다.
천주교 성지 잔디밭에서 출발하며 코스를 그렸다. 상관면 신리를 반환점으로 하고, 한벽루로 돌아와도 11km가 채 되지 않는다. 다시 신리 방향으로 들어가 색장마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두 번 정도 왕복해야 하프 마라톤 거리다.
장마로 불어난 전주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전주–새만금 고속도로 공사 현장을 지나며, 상판 제작업체로 참여한 김 사장님이 떠오른다. 중앙정부의 예산 지연으로 공사가 늘어지고, 그는 그 여파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조금 더 가면 종진 형의 농장이 나온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며, 항상 나를 지켜주는 색장마을 보호수와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숲길로 접어드는 이 구간은 한벽루까지 이어지는 3km 남짓의 그늘길. 무성한 나뭇잎이 한낮의 햇볕을 막아준다.
체력이 떨어지는 10km를 넘어설 무렵, 러너스 하이가 찾아왔다. 몰입감 속에서 무아지경이 시작되고, 고통이나 피로감이 사라지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앞으로 내딛는 다리에서 리듬을 타는 힘이 느껴지고, 생각이 비워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하지만 14km 지점부터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속도는 8분대 페이스로 느려졌고, 오른쪽 장딴지 아래에서 미세한 통증이 올라온다. 완치된 줄 알았던 왼쪽 발목의 상태도 좋지 않다. 조금 지나자 허리까지 아프기 시작한다.
17km부터는 9분대로 더 느려지며 ‘깔딱 고개’에 접어들었다. 몸도 마음도 한계에 다다랐고, “여기서 멈춰야 하나?” 싶은 생각이 스친다. 몸과 마음의 고비, 결정의 순간이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넘어서볼 것인가.
다행히 오른쪽 장딴지와 허리 통증은 더 악화되지 않았지만, 발목이 걱정이다. 무리했다간 부상이 다시 도질 수도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뭇잎 사이로 맑은 하늘이 비친다. 완주를 결심했다. 속도를 더 줄이면 하중도 줄어들 것이다. 설령 다시 도진다 해도 감당할 수 있으리라. 10분대 페이스. 거의 걷듯 달렸다.
20km를 넘어서자, 이젠 충분히 달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은 거리는 짧게 느껴졌고, 다리는 오히려 가벼워졌다. 하지만 속도를 높일 수는 없었다. 아니, 그건 불가능했다.
드디어 21.11km,
기록보다 완주가 중요했던 하프 마라톤이, 끝났다.
2시간 54분 54초. 8분 17초 페이스. 평균 심박수 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