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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kno Aug 26. 2023

첫 반려동물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할머니가 홀로 집을 지키고 계셨다. 나는 제일 먼저 할머니 방에 들러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갔다. 할머니는 하루의 대부분을 당신의 방에서 TV를 틀어놓고 지내셨다. 이따금 나를 불러 구운 은행이나 라면땅 같은 것을 주시며 말을 거시거나 백화점 나들이에 데리고 나가기도 하셨지만, 그때 말고는 항상 혼자 책을 읽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곤 했다. 내성적인 성격과 함께 할머니의 걱정 속에서 학교 같은 반 애들이나 동네 친구와 노는 일도 거의 없었다. 가끔 밖에 나가 골목을 돌아다니면 아이들이 학종이 불기를 하거나 팽이를 돌리고 있었다. 내가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면 그들은 살갑게 무리에 끼워주고 같이 놀았지만, 너무 늦으면 할머니가 너무나 걱정하시며 나를 찾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놀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학년이 올라가도 친한 친구들은 잘 없었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내게 어느날 친구가 생겼다. 평소와 같이 집에 돌아왔는데 현관에 아빠의 구두가 보였다. 아빠는 평소 내가 돌아오기 전에 출근을 하시는데 어쩐 일인지 아직 출근을 안 하신 거였다. 나는 신발을 벗으며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괜스레 불안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아빠는 나를 보더니 이따가 강아지를 데리고 올 거라고 했다. 떼를 쓰진 않았어도 몇 번인가 키우고 싶다고 했었던 나는 너무 신나서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서도 설레는 마음은 감출 수가 없어서 앉지도 못하고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한 손에 개가 들어있는 철창 집을 들고 오셨다. 검은색과 흰색이 뒤섞여 꼬불거리는 털을 가진 그 개는 속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빠는 같이 들고 오신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 안으로 넣어주면서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덧붙였고,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듣고 밤까지 기다렸다. 몇 뼘도 안 되는 좁은 철창 안에서 개는 엎드려 있거나 일어나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곤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인형 같아 너무 신기해서 나는 숙제를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7시쯤 되었을 때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개를 보더니 왜 풀어놓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개도 이때다 싶어서 얼른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선뜻 뛰어다니지는 못하고 제자리 주변에서 두리번대기만 했다. 엄마는 배고팠겠다고 말을 걸면서 빈 그릇에 사료를 가득 담아주었다. 

이름은 수빈이로 지었다. 엄마와 내가 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아빠가 짓자고 한 이름이었다. 개가 암컷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동물에게 사람 이름을 지어준다면서 싫어했다. 시간이 좀 지난 뒤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학원 강사였던 아빠는 그 이름을 특히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 이름을 가진 학생들이 대개 공부를 잘 해서 그랬다고.

수빈이는 몸통은 윤기나는 검은 색이고 입 주변과 얼굴에 하얀 얼룩이 나 있는 슈나우저 종이었다. 입양 오기 전 꼬리가 손가락 한 마디 길이만 남기고 잘렸는데 그 뒤로 평생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거나 반가운 사람이 왔을 때 나무 밑둥 같은 꼬리를 열심히 꿈틀거렸는데 그것이 아주 귀여웠다. 사납지 않고 온순한 성격 때문에 낯선 사람이 불쑥 찾아와도 짖지 않을 정도였지만, 가끔은 너무 조용해서 몸이 안 좋은지 걱정하기도 했다. 

 가족이 한 명 더 는 뒤부터는 집에 돌아와도 심심하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면 항상 앞에서 반겨주었고, 내가 무얼 하든 옆에서 참견하길 좋아했다. 반대로 수빈이도 땅을 파던 습관을 어디서 배웠는지 자기 집 앞의 거실 바닥을 열심히 파려고 하는 걸 보고 웃겨서 동네 놀이터로 데려가 땅파기를 시켜준 적도 있었고, 장난을 걸어오면 술래잡기를 하며 할머니 방에서 야단을 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거실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런 것처럼 수빈이도 씻는 것을 무척 싫어해 그때마다 부모님이  애를 먹곤 했다. 몇 번은 나도 옆에서 거들었는데 특히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온몸을 흔들며 물기를 털을 때가 가장 고역이었다. 부모님은 애를 씻기다 하도 말을 안 들으면 엉덩이를 한 대 때렸는데, 나중에 내가 혼자 씻길 때 그대로 따라하다가 수빈이가 화를 내며 나를 물어버리면서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창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을 때는 수빈이가 심심했는지 발 근처로 걸어와 엎드려 있곤 했다. 그러면 발가락에 온기가 느껴지면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애가 하루종일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 얼마나 심심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밤이 깊어지면 나는 수빈이를 데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껴안고 잤다. 평소에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던 애가 그때만큼은 신기하게 품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내가 잠들고 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제야 빠져나가서 자기 집에서 자곤 했다.

만남이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헤어짐도 불쑥 찾아왔다. 여느때처럼 아침에 수빈이에게 인사하고 학교를 다녀와 보니 거실이 조용했다.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가서 샀던 쿠션으로 된 개집과 밥그릇만 덩그라니 있었고, 들리는 것은 할머니 방에서 들려오는 TV 소리뿐이었다. 울 것 같은 마음을 꾹 참고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자 수빈이는 몸이 아파서 시골로 갔다고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알았다고 하고 끊었지만 상심이 너무 커서, 한동안 수빈이와 보냈던 기억들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잠을 잘 때나 학교에서 돌아올 때 불현듯 생각이 났고 그때마다 몹시 슬펐던 감정이 아직까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엄마가 말하길, 수빈이는 당시만 해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병인 심장사상충에 걸려 위중한 상태였고 집을 떠난 뒤에 곧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수빈이의 모습에는 온순한 성격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모습이 병 때문에 활기를 잃어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 뒤로도 두어 번 반려동물을 더 길렀지만, 부모님 곁을 떠나 독립을 하고 나서는 그런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한 생명을 거둔다는 것, 마지막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내 자유를 상당히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빈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심심할 때만 수빈이를 찾았을 뿐 씻기거나 아픈 데가 없는지 살피는 것들은 관심 밖이었다. 내가 아끼고 배려해주어야 하는 같은 생명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물들은 사람처럼 어디에나 같이 갈 수도 없고, 먹는 것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다. 그런데 동물들이 내게 맞춰줄 수는 없으니 온전히 내가 그들의 의식주를 부족하지 않게 챙겨주어야 한다. 또 나는 항상 해야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들은 오직 나만 바라보며 산다. 배고프면 밥을 줄 사람도 나, 심심하면 놀아줄 사람도 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시간을 쏟아서 반려동물이 행복한 일생을 보낼 수 있을 때, 혹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반려동물을 거둘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옛 추억과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만들어준, 그리고 이런 소중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 수빈이에게 이 공간을 빌려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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