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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kno Oct 12. 2023

첫 애니메이션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나만의 루틴이 있었다. 할머니가 점심을 차려주면 맛있게 먹고 방에서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면서 얌전히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쯤 되었을 때 늦잠에서 일어난 아빠가 학원으로 출근하면 그제야 내 세상이 되어서 거실로 나와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했다. 당시는 스마트 TV는 물론이고 유선 방송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으므로 대여섯 개 남짓한 지상파 채널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 채널을 돌리면서 보곤 했다. 어린 때였으므로 우리말 퀴즈 같은 교양 프로그램이라든지 다큐멘터리는 잘 본 적이 없고 애니메이션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꼭 시간을 맞추어 보았다. 내가 처음 챙겨보기 시작한 것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평범한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소녀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의 존재에 대항해 간호 천사로 변신하여 ‘치료’ 해주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였다. 


 에피소드의 시작은 보통 주인공이 명랑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보통 현실 세계의 조력자라고 할 수 있는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있고, 집에 돌아와서도 가족들과 밥을 먹는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사건의 발단 격으로 악당들이 등장해 사람들을 어려움이 빠트리거나 병들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다녀간 자리에는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환자를 돌보지 않고 도리어 침대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고, 다니던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잠에 빠져 복도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기도 한다. 사건이 벌어진 것을 알아차린 주인공은 급하게 그곳으로 이동해 악당과 싸워 이기고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것으로 끝난다.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는 악당이 학교로 쳐들어가 선생님과 학생들을 잠에 빠지게 하고 뒤이어 나타난 주인공도 주저앉아 눈이 감기기 직전, 사람들을 구해야 해! 하고 외치면서 눈을 뜨면서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다. 당시의 나와 비슷한, 아무것도 아닌 나이에 굳은 결심을 가지고 한번 쓰러졌어도 역경을 헤쳐나가는 것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에피소드가 끝나고 나면 그 뒤에 5분 정도 퀴즈 타임이 있었다. 캐릭터들이 나와 만담을 나누면서 오늘 방영된 줄거리와 관련된 객관식 퀴즈를 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편에 나온 악당의 이름이나 주인공과 싸웠던 장소를 물어보는 식이다. 그다음에는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알려주고 이쪽으로 전화해서 정답의 번호를 눌러달라고 한다. 정답을 맞히면 당첨된 사람에게 상품을 주었고, 실제로 받은 사람의 이름을 일부 가리고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매번 퀴즈를 보고 속으로 정답을 짐작하면서도 정작 한 번도 전화해 본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항상 그 번호 옆에 따라다니는 작은 괄호에 적힌 글씨가 막연한 두려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10초에 200원’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초등학생인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는 그 두려움을 이긴 적이 있었다. 준다는 상품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딱 10초만 전화하고 끊으면 되지’ 하고 나름대로 계산 하에 생각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만화 영화가 끝난 뒤였다. 나는 속으로 결심을 하고 몰래 TV 옆에 놓인 전화기를 들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부모님은 부엌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고, 거기까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번호를 누르고 끊으면 들키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뚜루루하고 두 번의 신호음이 온 다음 어떤 여자가 인사했다. “정답이 뭔가요?” ARS의 기계음이 나올 줄 알았던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3번이요”라고 말했다. “네, 3번이요.” 대답을 들으면서 잘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뒤이어 주소를 물어보는 게 아닌가. 순간 등에서 땀이 한 줄기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목소리를 낮추고 서울시 강서구로 시작하는 주소를 말했다. 그런데 그때 무슨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엄마가 누구한테 전화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얼버무렸다. 수화기에서는 “네? 뭐라고요?”라고 되묻고 있었다. 덩달아 아빠도 뭐라고 말했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딱딱하게 굳어서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사이 가까이 다가온 엄마는 재차 다그쳤고,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ARS 전화는 그렇게 실패로 끝났다. 


 어느 날은 에피소드가 얼마나 감명 깊었는지 학교에 매일 써내는 일기에 이것을 주제로 한 편을 쓴 적이 있었다. 그림일기를 쓰던 시절이었으니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것이다. 날짜와 날씨를 적고 그 아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넓은 여백에 변신한 주인공의 늠름한 모습을 그리고 제목과 함께 그날의 줄거리와 감동받은 포인트를 적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내용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보였고 나는 잠시 놀림 섞인 웃음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애니메이션을 봤다고 놀림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거니와 분위기에 휩쓸리는 바람에 창피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지금까지도 의문인 건 원래 일기란 나와 선생님만 보는 것인데 어떻게 다른 아이들에게 유출되었던 것일까? 혹시 끝내주게 잘 써서 선생님이 공개 낭독이라도 해주셨던 것일까?


 사실 이 애니메이션이 다시 생각났던 건 최근 유튜브라는 바다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파도를 타다 만난 한 리뷰 영상 덕분이었다. 줄거리와 결말 리뷰라는 제목이 붙은 그 영상은 어린 시절 마무리짓지 못한 추억을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영상을 보기 전 둘러본 댓글은 대부분 나와 같이 잊어버리고 있던 추억의 만화 영화를 올려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중요한 줄거리와 결말을 애니메이션의 몇몇 장면과 함께 소개해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초반부의 장면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얼굴이나, 모든 장면을 통틀어 제작자들이 가장 공을 들였을 변신 장면을 보면 바로 머릿속에서 잠들어 있던 기억이 떠올라 비어있던 부분이 완전해지곤 했다. 그리고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처음에는 알려지지 않아 몰랐던 인물들의 모습이 드러났고 처한 상황이 반전되기도 했다. 

영상을 보면서 놀랍도록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은, 옛날 만화 영화들은 사실 잔혹하고 울적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마치 옛날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던 세계 전래동화에 알고 보면 잔혹하거나 비극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몰랐던 에피소드 중에는 주인공이 자신에게 간호 천사가 되는 법을 알려주고 조력자로서 든든하게 지켜주던 인물이 힘을 잃고 악당으로 돌아선 것을 알게 되면서 그만두고 싶다고 펑펑 우는 모습, 하지만 그 사이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보고 다시 마음을 먹고 치료해주고 싶다고 일어서는 모습, 그리고 결국 마왕을 물리친 뒤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각자 의사와 간호사가 되자며 수다를 떨던 밤, 열한 살이 되는 내일 너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도대체 열 살 나이에 죽는다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나는 같은 나이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에 죽기 싫다며 서럽게 우는 모습들은 너무나 슬프고 현실적이어서 만화 속 주인공들이 정말로 어린이들이 맞는지, 또 어린이가 보는 만화 영화가 맞는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인 건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이 살아나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애니메이션을 잘 보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싫어졌다기보다는 잠시 시기를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화든 영화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모든 것에는 유행에 따라, 혹은 때때로 변하는 생각이나 주위 환경에 따라 좋아하는 장르가 달라진다. 어느 때는 로맨스가 좋다가도 또 조금 지나면 우리 편이고 상대고 너 나 할 것 없이 다 죽는 공포 스릴러가 좋아지기도 하고. 그러다 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우연히 다시 돌아보면 그 시절에는 왜 이것들을 좋아했는지, 어떤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는지 떠올라 잠시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또 그것들이 향수처럼 몸에 남아 내 생활에 묻어나곤 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되기도 한다. 내 삶이 지금 이 순간만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하고 또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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