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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kno Jul 08. 2024

폭풍의 시대에서 살아간다는 것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칠죄종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규정하는, 죄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죄이기도 한 7가지 죄악을 일컫는 말로서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색욕, 탐욕, 나태가 해당한다. 이에 한가지 죄목을 추가해 팔죄종으로 명명한다면 빈 자리에 ‘무지’ 를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에서 무지가 일으킨 참상을 목격했다. 그 참상이란 다른 배경 혹은 다른 상황에 놓여있었다면 지극히 평범했을 행동들이 정교하게 설계된 편향적 사고에 따른 무지라는 포장지로 싸여져 있고, 가해자들은 그것을 종교처럼 믿었다. 그리고 실체가 벗겨지는 순간에도 그들은 차라리 대답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의 여주인공 한나는 작품 내에서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마이클과 만날 때도, 재판소에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할 때도, 글을 깨우친 뒤에도. 투옥한지 20년이나 지나서 면회를 온 마이클에게 사과와 뉘우침보다 이해와 배려를 먼저 바랐으며, 계몽에 대한 보답으로 사죄 대신 죽음을 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밟고 올라선 책들과, 유산으로 남긴 깡통과 7천 마르크는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처럼 인간 본연의 일말의 양심일까?


혹은 무지 자체가 죄가 되는 경우는 어떤가? 한국 전쟁의 참혹한 희생양이었던 노근리 주민들에게는 다소 무례한 말이기도 하겠다. 그들은 읍 소재의 가난한 농민일 뿐이었으며 전난을 피해가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가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폭풍처럼 난폭하게 세상을 쓸고 지나가고, 죽은 사람은 그대로 죽어있을 뿐이다. 앎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몇 안되는 가치 중 하나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 그 사실은 더욱 중요해졌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의 유튜브 영상, 그보다 더 많은 뉴스 기사, 진위 여부를 가려낼 수 없는 센티미터 단위의 지라시들이 범람한다. 이제 그들처럼 무지의 장막 안에서 성실하고 억척스럽게 살 당위조차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과잉 정보에 의해 통제당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들을 활용해 주체적으로 살아갈 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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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고독하다. 

사람은 착하지 못하고, 굳세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비참한 모습을 보인다. 

비참과 부조리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운명일지라도 

우리는 고독을 이기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결의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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