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에서 송/신년 모임을 준비하고 있는데 K에게 카톡이 왔다. 열어보니 H가 조금 전 전주 집회에서 발언한 영상이 도착해 있었다. 전주에서 서울로 오는 길에 K에게 따로 부탁했다. H의 발언을 꼭 듣고 싶은데 하필 오늘 일정이 있어서 참여가 어렵다고. 집회에 간다면 H의 옆에 있어 주면 좋겠다고.
전날 밤에는 H와 통화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전 H는 카톡으로 질문을 보내왔다. 밀려왔던 발언을 내일 하게 되어 발언문을 준비 중인데, 해야 할 말은 많지만 무얼 말해도 다 틀린 것 같아서 혼란스럽다고. 당장 들리길 바라는 말이 있다면 거칠게라도 나눠줄 수 있냐고. 그러나 나도 다르지 않았다. 할 말은 쌓여 있었으나 한 달이 넘도록 꺼내기 주저한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나도 자신이 없어서 하지 못한 말을 H에게 떠넘기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H의 발언에 영향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대신 그 마음을 적나라하게 나눴다. H는 다양한 존재와 소수자들이 함께 가고 있다는 집회에서 여전히 소외되는지도 모르게끔 소외되어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비인간 생명들과 기후생태 위기를 말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공감하며 듣던 중에 문득 다시 밀려드는 걱정을 솔직히 털어놨다. 그런데… 그게 사람들에게 전해질까? 사안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너무나 알겠는데, 서울도 아닌 전주에서 그게 온전히 전달될까?
남태령의 밤이 있었던 주말에 한강진에 다녀오고 전주 집회에 참여하며, 서울에 비해 전주 집회는 어떤 부분에서 계속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올라오는 발언자도, 발언 내용도 대체로 비슷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서울 집회의 자유발언에서 들려오는 페미니즘과 젠더―퀴어에 관한 논의가 당연해지다 못해 벌써 조금 정형화되어가는 면도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놀랍고 부러웠다. 솔직히 질투 났다. 그래! 나 요즘 수도권 집회를 질투하고 있다. 부러워 미치겠다. 그럴수록 전주 집회 앞에서 더 답답해지고 속이 탄다. 트위터와 현장을 오갈 때, 전주와 서울을 오갈 때 서로 다른 광장들이 내 안에서 다투고 분열한다.
하지만 H와 얘기하다가 그게 전주의 문제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별안간 찾아왔다. 아니, 전주 집회의 환경에 개선될 점은 있지만, 그걸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다면 가만히 두고 보거나 피하기만 할 문제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왔다. 나는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하고 정정했다. 지역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거라고 미리 타협하거나 포기하려는 선입견 때문에 지역 집회의 걸음이 더 더딘 것일 수도 있겠다고. 그러니 네가 발언해서 상처받기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지역에 네 발언이 필요할 것 같다고.
내 말이 어떻게 가 닿았을지는 모르지만, 생각이 다소간 정리된 것 같다는 H의 말에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집회 당일, 몇 시간 전 보낸 응원 문자에 H는 답이 없었다. 답할 정신도 없었을 거다.
그렇게 K를 통해 대신 받은 H의 영상이었다. 모임을 준비하는 내내 발언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지가 계속 염려되었기에, 같이 있던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영상을 재생했다. 이윽고 들려오는 H의 목소리.
사실, 그걸 보고 전주로 냅다 달려가고 싶었다. 아니면 H에게 전화해서 걔를 칭찬 감옥에 가둬버리든. 어떻게든 H를 만나서 꽉 안아주고 자랑하고 싶었다. 고래고래 말하고 싶었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 영상에는 H가 있었다. H의 자유발언이었으니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였지만, 정말로 H가 있었다. 내가 아는 H가. 사람들 앞에 서고 발언대에 올랐다고 해서 조금의 말도 꾸며내거나 과장하지 않는 H가.
삼 분간 H는 나직하고 신중하게 자기가 할 말을 했다. 그 시간이 귀하고도 무겁다며 다른 어디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준비한 발언문만 보며, 다른 얘기로 새지 않고 하려는 말만 했다. 기후위기, 생태학살, 비인간 동물을 가두는 수용 시설, 지역 발전이라는 거짓말 앞에 사라져가는 생명들의 서식지, 환경 운동에 대해. 그 어떤 소수자도 생명도 뒷전으로 미루거나 배제하지 말자는 절실한 마음을 침착하게 외쳤다.
영상을 다 보고 한참 멍해졌다. H가 마침내 해냈다는 생각과 함께 커다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라면 이 시국에 충분히 들리지 않을 듯한 그 모든 얘기, 그러니까 오로지 정말 그 얘기만을 내내 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할 수 없었을 테니까. 용기가 안 났을 테니까. 12.3 정국 앞에 사안들의 중요도를 나누거나 따지지 말자고 거듭 말하면서도, 내가 어떤 사안에 파묻혀 있다는 걸 들킬 게 두려워 다른 얘기도 덧붙였을 거다. 아니, 그런 선택을 내릴 모습이 그려질 만큼 그 사안이 내게 덜 중요했던 거다. 적어도 H에 비하면. 그제야 내가 함께 참여한 집회에서 어묵 국물을 먹거나 일회용 핫팩을 쓸 때 줄곧 맨몸으로 버텼던 H가 이해되었다. 같은 문제를 대화하고 공부해 왔으나 서로가 느끼는 간절함이 달랐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 날, 보름 만에 다시 가게 된 한남대로에서 수많은 자유발언을 들으며 또 생각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문장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어떤 말보다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만이 꺼낼 수 있는 말, 혹은 내게 가장 절박한 말이 가장 힘이 셀 수 있구나.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게도 묻게 되었다. 그럼 나는? 내가 저 위에 있다면? 이 많은 이들 앞에 선다면? 수많은 정체성으로 이뤄진 내가 지금 단 하나의 자리만 앞세울 수 있다면 그건 무엇일 수 있는가? 나는 지금 여기서 무얼 가장 크게 외치고 싶은가?
그리고 다시 주말을 앞둔 오늘, 이 글을 쓰기 몇 시간 전 전주에서 마침내 미뤄왔던 말들을 그 일부나마 전할 수 있었다. 이번 정국이 오고 다른 사안이 아닌 탄핵 집회에서는 첫 발언이었다. 매주 있는 토요 집회와 별개로, 며칠 전 갑자기 마련된 ‘세상을 바꾸는 수요일’이라는 오픈 마이크가 이번 주에만 금요일인 오늘 열렸다. 그리고 그 자리가 발언 시간과 내용, 발언자 선정에 비교적 자유롭기 어려운 토요 집회의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친구와 동료들의 고민이 모인 결과란 걸 알았을 때, 선명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지역민이구나.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자리는 지역에 있구나. 지난 한남대로의 발언들 속에서도 좀처럼 잘 들리지 않았던 지역의 목소리가 내게는 당장 간절하고 절박했구나.
돌이켜 보면, 계엄이 해제되었던 날 처음 열린 전주 집회의 발언에서 누군가 지금 여기 있을 때가 아니라 서울로 가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경히 요구했을 때부터 이미 그랬다. 서울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 관저에 더 가까이 보이고 들리게 해야 한다, 지역 집회는 의미가 덜하다는 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심지어 나마저도 서울로 가서 더 가까이서 역사가 쓰이는 그 현장에 같이 있고 싶다고 갈등하게 될 때마다,
어이없었다. 지역엔 역사가 없는가? 지역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지역에는 광장이, 민주주의가 없는가?
어쩌면 나는 탄핵안이 가결된 날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말들에 훨씬 깊이 기대어 믿고 싶은 마음인 거 같다. 이 작은 지역에는 수도권에 비해 무지개 깃발이 많지 않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이 좁은 지역에서는 단 하나의 깃발도 더 크게 보인다고. 그러니까 지역 광장이라서 더 해낼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아마도 그래서 더 아프게 낙담했던 것도 같다. 조금씩 늘어가는 무지개와 별개로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면들에.
오늘 나보다 앞서 발언한 트랜스젠더 정체성의 동료는 이소라의 <Track 9>을 선곡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전주 집회에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진심으로 기뻤다. 그 노랫말에 화답하는 마음으로 내가 (사실 이소라의 노래를 들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먼저 골라뒀던 곡이지만) 신청한 황푸하의 <나의 세상>이 들려올 때는 꿈 같았다. 나는 특히 아래의 노랫말을 좋아한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마음에 품고 있나요?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그대 안에 있나요? 내 세상은 어려워. 내 싸움은 외롭고. 나의 주먹 안에 담긴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주먹 안에 담긴 사랑이 꼭 전주라는 지역에 담을 수 있는 사랑처럼 들린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눈앞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핸드폰들의 불빛을 보는데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신청곡을 보내면서도 요즈음 집회에 이렇게 잔잔한 노래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접수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 각오하고 왔는데.
그럼에도 사랑을 말하기까지, 광장에서 또 지역에서 사랑을 말하게 되기까지 아주 긴긴 시간이 걸렸다.
당분간은 수요일을 기다리고 싶어서, 수요일에 도착할 사랑들을 들으려 살아가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끝끝내 다시 거리이기에 만나고 들을 수 있는 얼굴과 목소리들. 함부로 예상하고 싶지 않고 어떤 예상이든 가장 놀랍고 부끄럽게 뛰어넘기를 바라게 되는, 그 모든 마주침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궁금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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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작업실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사랑을 말하기까지> 에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