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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Mar 23. 2023

저 선생님 손은 잡아도 되겠다

특수교육은 제작년에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복지관에서 발달장애학생들과 음악수업을 했다. 기존에 성인대상으로 운영하던 음악 만들기 수업을 변형해서 준비했다. 첫 시간에학생들과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말에 뭐했는지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 물었는데 좌중이 고요해졌다. 설명을 하고 나서 '방금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지?'하고 확인하지 않으면 화제가 금방 바뀌었다. 첫날 진땀을 빼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놀이로 커리큘럼을 대폭 수정했다. 다행히 난타나 우쿨렐레 연주 등 음악경험이 많은 학생들이라 뭐든 잘 따라했다. 시간이 지나며 서로 익숙해지면서 학생들도 좀 더 수업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각자 한 곡씩 노래를 만들어 발표회까지 했다.


그 경험을 믿고 패기있게 특수학교에 지원했는데 복지관과는 또다른 경험이다. 첫 시간에 어떤 학생은 바닥을 구르며 떼를 쓰고 어떤 학생은 울면서 책상을 넘어뜨렸다. 이번에도 준비한 커리큘럼을 많이 고쳐야할 것 같다.


출근하는 길목에 벚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아이고 어른이고 벚꽃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방과후 선생님은 정규수업이 끝나면 수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하교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아이 손을 잡고 웃고있는 어른들을 보면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기쁨이구나 싶다. 한달 남짓 안되는 짧은 기간에만 즐길 수 있는 만개한 꽃과 그 아래 활짝 웃는 아이들.


교실에는 5-6명 정도의 학생과 보조강사 선생님이 계신다. 내가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보조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지도한다. 선생님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계속 올라오지만 내가 꿋꿋이 진행해야만 그나마 분위기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악기를 던지거나 색연필을 입에 넣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수업을 한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수업에 혼자서 노래부르고 악기 연주하고 있으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다. 


수업 끝을 알리는 종이 치고 해방감에 속으로 하하하 웃었는데 한 학생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작은 손이 스르륵 들어오는데 심쿵.. 수업 내내 따돌리더니 손을 잡아주니 고마웠다. 그러고보니 학생들 하교시킬때 손을 잡고 데리고 가야한다고 했다. 신나서 갑자기 달려나가거나 계단을 걷다 힘이 빠져서 넘어질수도 있어서 그렇다고. 손을 잡는 것은 '나를 하교시켜라'라고 말하는 무언의 압박이었던 것이다.  

 

하교시키는 일도 쉽지 않다. 오늘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팔을 꼬집혀서 멍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걷는게 불안해서 손을 잡아주려 한 것인데 학생은 잘 모르는 선생님이 자기 손을 잡으려고 하니 거슬리고 불편했는가보다. 보조 선생님이 마무리 하시는동안 교실에 올라와서 아이들이 발로 밀어놓은 책상을 바로잡고 어지러진 장난감을 주웠다. 이게 인생의 쓴맛인가. 하루에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근무하는게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규교사나 부모님들은 더 오랜시간 아이들과 함께하는데 얼마나 힘드실까 싶었다. 어려움은 피하고 쉬운 길만 가고 싶어하는 게 과연 괜찮은 삶인가? 


앞으로 학생들이 귀찮을 때도 생길 것이고, 힘빠지는 날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이는 그 자체로 축복이니까 늘 아끼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학생들에게 대단한 변화를 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학생들이 '저 선생님 손은 잡아도 되겠다'고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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