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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Apr 18. 2023

마스크 겉과 속

마스크 없이 다니는 날이 다시 올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다. 처음엔 마스크가 답답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마스크를 사용한 위장술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섭섭하다. 마스크를 쓰면 화장을 하지 않고 나가도 되고, 기분 나쁜 일이 있을때 눈으로 웃으면서 입은 삐죽거릴 수 있어서 좋다.


시골에서 농사하는 부모님은 고지식한 분들이다. '거짓말 하는 사람이 제일 나쁘다'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나도 표현이 서투르더라도 진실한 마음이 제일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진실한 마음만큼 적절한 표현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표정과 말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여러 번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


20대 초반에 자주 어울려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우리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편입학을 해야할까? 유학을 가야할까? 걱정이 많아서 의기소침해졌다. 만날 같은 고민을 이야기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위로하는 게 어느순간 즐겁지 않았다. 모처럼 만나면 썸타는 남자이야기 같은 시시껄렁한 수다나 떨며 놀고 싶은데 다녀오면 마음이 어두워졌다. 친구들과 의리때문에 만남을 지속할 뿐이었다.


어느 날 맘 먹고 모임에 그만 나오겠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이유를 물었을때 적당히 둘러대면 좋으련만 나는 너무 솔직하게 답변하고 말았다.


나 "너희들 만나면 예전엔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밌었는데 요즘엔 우울해"

친구A "(황당해하며) 니는 그냥 나가면 그만이지만 남은 우리들은 그럼 어떡하라고? 우리를 만나면 왜 우울한데?"


처음 꺼낸 얘기부터 잘못되었고, 1절만 하면 됐을텐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와서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기어코 안해도 될 말까지 하고 말았다.


나 "너네 요즘 만나면 맨날 우는 소리만 하잖아. 달라지는 것도 없으면서. 나는 너네를 여전히 좋아하고 일대일로 따로 계속 만나고 싶지만 이 모임은 이제 참석하고 싶지 않아"


화가 나거나 더욱 우울해진 친구들 얼굴을 보고 내가 실수했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은 나를 빼고 새로운 단체톡방을 개설했고, 계모임 회비도 돌려주지 않았다. 나도 그정도 눈치는 있어서 돈을 돌려달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 후로 친구들을 만난 적은 없다.


그 외에도 베이커리에서 알바할때 사장님 계신 줄 모르고 알바생들에게 사장님 흉을 보다 해고당하거나, 병원에 봉사활동 갔다가 철 좀 들어라는 조언과 함께 짤린 적도 있다.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다. 그걸 알아챌 눈치가 있었으면 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니 철이 들긴 하나보다. 이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은 참는다. 그렇지만 얼굴 표정 숨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나는 마스크를 애용한다. 특히 출근할때 반드시 챙긴다. 학교 선생님들이 피어싱 하는 걸 나쁘게 본다고 들은 기억이 있어 인근 역에서부터 쓴다. 피어싱 문제가 아니라도 학교에서는 마스크 쓰는 게 유용하다.


특수학교에서 수업하다보면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처음엔 애들이 왜 책상을 엎는지. 왜 땜빵이 생길 때까지 머리를 뽑는건지 잘 몰랐다. 계속 지켜보니 그런 말썽들이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말썽을 부릴 때도 선이 있다. 책상을 엎었다가도 '똑바로 정리하세요'하면 바로 정리하고, 소리 지르면서 울다가도 조금 지나면 방긋 웃는다. 개그프로그램 콩트처럼 매시간 똑같은 패턴의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다 잠깐 상황을 멀리서 보면 어이 없어서 종종 웃음이 나온다.


민성(가명)이는 물건을 쏟는 것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리듬악기 연습이 재미있었나보다.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고 무심코 "오늘 민성이가 아주 얌전하네. 고맙네."하고 말하자 민성이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쉐이커가 모여있는 상자를 쏟아 화답했다. 눈치를 슬슬 보는 모습이 마치 '사고 안치면 시시하잖아요~ 제가 얼마나 장난꾸러기인지 잊으시면 안돼요~'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잘 알겠다...마스크 속에서 입은 웃으면서 밖에서는 도끼눈을 뜨고 "쏟은거 주으세요"했다.


학교를 나와 마스크를 벗고 후련하게 걷는다. 아이들을 만나며 나와 공통점을 찾는 것 같다. 감정표현에 서투르지만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 때문인가 아이들이 아무리 미운짓을 해도 화는 나지 않는다. 물론 나는 하루에 한 두시간 학생들을 만나니까 속 편하게 얘기하는 것이고 계속 붙어있는 선생님들에게는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가벼운 책임감으로 잠깐 왔다 금방 떠나는 방과후 선생님은 앞으로도 가능한 오래 마스크를 애용하며 겉과 속이 다른 표정으로 아이들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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