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공연장이나 학생들 앞에서 벌벌 떨지 않을 정도로 능숙해졌다. 동시에 공연 하나 하나에서 느끼던 희열,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벅차던 느낌도 전보다 옅어졌다. 작년에 프로그램 하나를 끝 마치고 집에 가면서 엉엉 울었다. 외관상으로는 멋지게 마무리 되었지만 작년이나 제작년과 비교했을때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인디 뮤지션. 지역 기획자.
처음 만난 누군가 나에게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며 저 두 단어를 꺼낸다면 끄덕끄덕하며 한숨이 나올 것 같다. 흡사 계란으로 바위치기, 수영강에 보트 띄워 손으로 물 젓기처럼 아득하다. 부산은 음악이나 기획을 하며 주목받기 쉽지만 멀리 가기는 어렵다. 공연장 사장님들은 공연 할때마다 관객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기획자들은 유료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한다. 속으로 '사람들이 끌릴 수 있도록 더 재미있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했다. 나는 다르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년 열심히 하면 3분 만에 공연이 매진되고, 섭외가 물밀듯이 들어올 줄 알았다. 이번 공연도 관객을 모으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음악이나 공연이 좋아서 오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아직도 알음알음으로 알게된 관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이 달라지지 않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쭉 이어질까봐 불안했다.
새로운 팬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습관적으로 살면 안된다. 더 치열한 고민, 더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마음은 뻔한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고민하던 와중 <미래의 나를 구하러 갑니다>를 읽었다. '후회는 줄이고 실행력은 높이는 자기조절의 심리학'이라고 설명하는 심리학자 변지영 작가의 저서다. 최근에 발표된 뇌과학, 인지심리학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자기조절을 위한 심리 도구들을 안내한다. 선택할 때 우리 내면의 여러 자아들은 경쟁과 협상을 한다. '현재의 나' 와 '미래의 나'가 경쟁하면 우리는 보통 현재 나의 손을 들어준다. 미래의 불확실한 이득보다는 당장의 확실한 이득을 원하기 때문이다. 또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거나 미래의 자신을 상상할때 현재의 내가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미래의 내가 얻을 이익은 타인이 얻는 이익처럼 느낀다.
'자기 연속성'은 미래의 나 또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얼마나 연결된다고 느끼는지 자각하는 정도를 뜻한다. 자기연속성이 높으면 미래의 내가 원하는 것을 현재의 이익처럼 느껴 선택하기 쉬워진다. 지금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떠맡기는 것인데, 미래자기연속성이 높아지면 미래의 내가 겪을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여 회피하거나 미루는 일이 적어진다. 그래서 자기연속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매 장을 마치는 페이지에 질문지가 있다. '10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여전히 멋있고 계속 성장하는 뮤지션이 된 것은 10년 전에 개미처럼 노력했기 때문이다. 고맙다.'라고 적었다. 그걸 쓰고 기분이 좋아서 동네를 한 바퀴 뛰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가게 문도 다 닫았는데 집 근처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나도 6시30분에 일어나 학교가서 공부하고 12시까지 야자하고 돌아오던 시절이 있었지. 20대, 30대가 되었을 모습을 상상하며 일기를 쓰던 고등학생의 내가 떠올랐다. 세상물정 모르고 공부만 했다고 아쉬워했는데,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그 삶에서 나름의 낭만을 찾으려 했었던 기억이 났다. 당시 상상한 대로 음반도 내고,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니 다행이다. 해맑았던 내가 자랑스러워할 내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니 모든 일이 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