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 좋아좋아~ 신바람 권박사

by 권눈썹

12월에 할머니 집을 나온 후 종종 후회했다.


좀 따뜻할 때 나올 걸...


기름 보일러 난방비 무서워서 난로 틀고 잤더니 전기세 8만원이 나왔다. 제대로 따뜻하지도 않았으면서..추우니까 씻기도 불편하고 몸이 움츠러들어 새로운 걸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보다못한 내꿈씨가 기름 넣어라고 10만원을 찬조 해주어서 보일러를 매일 틀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버티다보니 입춘이다.


이번 겨울 동안 하려고 마음 먹은 두 가지 일이 있었다. 첫번째는 그간 공연에 집중하느라 미뤄둔 음악작업. 두번째는 강사 일 영업하기. 작업은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라 금새 돌입했는데, 영업은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영업에 앞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는데, 관련 전공이나 자격증에 적을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신분세탁을 시작했다. 우선 온라인으로 음악심리상담사 자격증, 동화구연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사이버대학실용음악과에 편입을 했다. 자격증 딴다고 해서 갑자기 실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굳이 돈 들여 시간 들여 따야할까 생각하며 미루고 있었는데, 따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준비되었다는 걸 보여줘서 나쁠 건 없는데 괜히 고집부렸던 것 같다. 자격증을 따면서 수강한 강의들이 수업 준비에도 실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포트폴리오는 미리캔버스와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공연장에서 밝게 웃으면서 기타들고 있는 모습과 이력으로 앞 장, 수업진행 사진을 넣고 안내글을 써서 뒷 장을 만들었다. 드디어 완성된 포트폴리오를 챙겨 동료 선생님과 둘이 영업에 나섰다. 기관에서 만난 복지사분들은 대부분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환대해주셨는데 왠지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선생님 뒤에서 쭈뼛쭈뼛하다가 지나갔다.


다음 날, 집 근처 학교에 지원공고가 떠서 이력서를 넣으러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다함께 돌봄 센터가 보였다. 마침 가방에 포트폴리오도 챙겼고 안에 사람소리도 들려서 용기내 다가갔다. 아무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떨리는지. 문 앞에 갔다가 나왔다가 몇 번을 하다가 겨우 노크했다. 문 열고 처음 만난 젊은 선생님이 경계하는 눈치로 '어쩐 일이시죠?' 물으셔서 목소리가 띄엄띄엄 나왔다. '아 저 음악강사인데요 여기 근처왔다가 이거 드리려고...'하고 말했는데 센터장님이 뒤에서 나오셨다. 센터장님은 어떤 수업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시고 강사료와 시간도 대략 이야기 해주셨다. 정신없이 이야기 하고 나왔지만 어쨌든 혼자서 미션 성공...


그날 저녁 신바람 이박사의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게 되었다. 신바람 이박사가 관광버스에서 가이드로 일하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섯 시간동안 매들리를 불렀다는 시절의 영상이었다. 모처럼 나들이 나온 어머니들이 신나게 춤추면 이박사는 천원씩 팁을 받았다. 그런데 이박사는 곧 이 일을 잃게 되고 마는데... 관광버스 내 노래방 영업 적발로 여행사가 영업정지를 받게 된 것이다. 갈 곳 없는 이박사는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학교마치고 온 아들이랑 라면 끓여먹고 시간을 보냈다. 어린 아들도 아빠가 왜 출근안하는지 궁금한 눈치고 어쩔 수 없어 유원지로 나간다. 천막을 치고 노래 부르고 놀고 있는 잔치판에 가서 '저 신바람 이박사라고요. 노래 부르고 팁 벌어먹고 사는 사람인데요. 제가 노래 한 곡 해도 되겠습니까?'하고 묻는다. 처음 들른 천막에서는 이미 파할 때 되서 필요없다고 하고. 어머님들 모인 천막에서는 밀쳐지며 불량배 취급을 받는다. 마지막에 들른 천막에서 수락을 받고 한 손엔 마이크 한 손엔 천원짜리들을 요령있게 쥐면서 노래하는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


이 영상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밖을 나가면 그래도 기회를 얻고 돈을 벌 수 있는데 집에 가만히 앉아서 신세 한탄하고 인생을 비관할 필요가 있겠나. 다음날부터는 아침마다 이박사 뽕짝매들리를 들으면서 기분을 올리고 '나는 이박사의 후예 권박사다'하면서 포부를 다졌다. 인생에 어려움이 생기면 쩔쩔매는 게 내 본캐였는데 그렇게 사니까 맨날 우울하고 불만 많고 인생도 재미가 없고. 신바람 이박사처럼 한 번 사는 인생 어깨춤 나오게 재미나게 살아보고 싶어서.


심장 부여잡고 간신히 미션 성공 이후 이틀 연달아 영업을 했다. 정기수업들은 이미 확정되었지만 원데이 클래스는 계획하는 곳들이 많았다. 내친김에 타로카드 전단지까지 하루만에 후다닥 만들었다. 완벽해질 때까지 끝내지 못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제는 그런데 연연하지 않는다. 이박사는 장비도 마이크도 아는 사람도 없이 그냥 길에 나가서 노래부르고 돈을 벌어오는데. 나도 못할 게 어디있나.


내꿈씨는 자신만만한 내 모습에 즐거워하며 차량운전으로 부스터 역할을 해주었다. 오전에 짬내서 동네 곳곳을 다니며 나를 열심히 추천하고, 문을 열고 나와서는 내꿈씨와 하이파이브 하며 화이팅 했다.


복지관 마다 다른 분위기들도 느끼고. 어떤 지역에 어떤 복지관이 있는지. 노인복지관과 아동센터는 어떻게 다른지.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는 것도 재미있고. 블로그를 어떤 식으로 정리하면 좋을지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돌아보니 나에게 이것저것 안된다고 생각한 것은 세상이 아니고 나 자신이었다. 영업까지 하면서 일 구하기는 싫어. 자격증을 굳이 따야해? 이런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스스로 더욱 위축되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일 주나 돈 주나. 이런것 저런것 따질 게 없다.


음악에 발을 들인후 지난 7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일을 겪어봤다. 사무직으로도 일해보고, 학원에서도 일해보고, 전단지 돌려 과외도 해보고,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사업으로 일도 해봤고, 알바와 방과후 수업을 병행하기도 했다. 여유롭진 않아도 밥 굶은 적 없었다. 요리사가 아침에 피곤해도 시장 나가서 재료 사오는 것처럼. 영업도 프리랜서 강사로서 해야할 한가지 일로 삼을 것이다.


계속 하니까 이제는 영업도 나름 재미있어진다. 시간 제한 안에 많은 곳에 이력서를 배포하는 것이 게임처럼 느껴진다. 사무실 문을 열었을때 처음에 경계했다가 음료수 내어주면서 길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분들을 만나며 자신감이 점점 차오른다. 씨를 뿌렸으니 어떻게 결과를 맺게 될지 기대도 된다. 18군데 돌렸으니 그 중 한 두군데만 연락와도 기쁠 것 같다. 앞으로 가볼 데도 20군데는 더 될 것 같은데 올해 새로운 재미있는 일들이 생겨날 것을 기대하니 벌써부터 일 많으면 차 사야 할텐데 어떡하지 하며 김칫국을 마신다. 아싸 좋아좋아~ 우르르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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