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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Oct 07. 2020

한국의 프레디 머큐리, 나훈아 입덕 썰

55년째, 꿈을 파는 남자

이번 추석은 코로나의 침투로 다들 친척을 만나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이번 해 특히 길었던 추석연휴를 보내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다들 나훈아 이야기였다. 우리 집도 20대에서 80대까지 7명의 가족들이 모여 나훈아 콘서트를 봤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피아노랑 기타 한 대만 있으면 공연을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사실 그의 공연을 이렇게 길게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른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걸 듣고 나훈아를 알게 되었고, 유명가수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은 그냥 노래를 잘 하는 유명가수가 아니라 엄청난 퍼포먼서였다!! 무대에서 옷을 갈아입었고, 수영하고, 하늘도 날고, 코로나도 불태워버렸다!!!! 모든 걸 다 보여줄 기세의 70대 가수의 공연을 할머니 안방 TV로 보며, 처음에는 뜨악하다가 중반부터는 다음무대엔 대체 뭘 보여줄까 기대를 하면서 보게되었다.

기타까지 들어버리신 나훈아 오빠... 그의 매력 출구없다 출구없어

긴 시간 동안 계속 한 사람이 나와도 지겹지 않았던 이유는 진행이 너무 매끄럽고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무대 마다 다른 연출. 다른 편곡. 다른 의상으로 새로운 장면을 보여줬다. 장르에도 얽메이지 않았다. 디스코, 어쿠스틱 발라드, 재즈, 메탈까지 녹였다.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라는 그의 말처럼. 공연구성과 무대연출의 상상력은 무한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 신곡도 여러 곡을 불렀는데, 처음 안 사실이지만 그의 히트곡 대부분은 자신이 작사, 작곡했다. 가창과 퍼포먼스 실력이 출중하니까 미처 곡까지 직접 쓰리라 생각을 못했는데 또 한번 놀랐다.


신곡 중에 내가 가장 좋았던 곡은 '테스형' 이었다. 이 곡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인생이 왜 이러냐'하고 물어보는 내용이다.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대중가요에서는 너무 무겁게 표현할 수 없으니. 소크라테스에게 질문하는 내용으로 가사를 쓴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무게감 있고 어려운 가사를 쓰고 싶어질 수도 있을텐데, 대중들에게 오래 사랑받는 법을 터득한 사람의 유머에 모두들 즐겁게 웃었다.레전드 가수의 무대를 본 것도 굉장히 즐거웠지만 관객을 위한 작은 배려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부산 출생의 나훈아가 다른 지역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를 할 때는 자막을 달아 그 뜻을 풀이해서 써주었다. 또 신곡이라는 표시는 제목 위에 크게 '신곡'이라고 자막을 달아서 표시를 해주셨다. 진짜 콘서트의 느낌을 주기위해 중간광고가 없었고, 재방송도 안한단다. 나훈아가 본인의 출연 게런티를 받지 않는 대신에 내건 딜이였다고 한다. 오랜시간 대중에게 사랑받은 가수로서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었나.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한순간에 변해버려 웃지 못할 날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55년째 무대를 날아다니는 나훈아를 보니 마음에 위안이 들었다. 이 글을 마치는데 마침 나훈아의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무시로'가 랜덤재생에서 플레이 되고 있다.

랜선관객> 옛날 영상 속의 자신과 듀엣으로 노래하는 모습> 수영하는모습> 코로나를 터뜨려버리는 모습

이날 그의 기가 맥힌 멘트를 정리해봤다."(나라가 주는) 훈장을 사양했다고 하더라"고 김동건 아나운서가 질문했다.나훈아는 이에 "세월의 무게가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어떻게 훈장까지 달고 삽니까. 노랫말 쓰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꿈이 가슴에 고갈된 것 같아서 11년동안 여러분 곁을 떠나서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랬더니 '잠적했다'고 하고.'은둔생활한다'고 하고 별의별 소리를 하더라. 이제는 뇌경색에 말도 어눌하게 하고 걸음도 잘 못걷는다고 하니까. 내가 똑바로 걸어다니는 게 미안해 죽겠다"


"제가 잘 모르긴 해도 살다 보니까 세월은 누가 뭐라 해도 가게 되어있으니까 이왕에 세월이 가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된다. 우리가 세월의 모가지를 딱 비틀어서 끌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면 세월한테 끌려가는 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 가본 데도 한 번 가봐야 한다." 


"안하던 일을 해야 세월이 늦게 간다. 지금부터 저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거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마음이 되어주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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