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는 소통하라고 만들어진 것인데, 언제부턴가 받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같은 말이라도 문자로 보는 게 좋다. 내 주변에도 전화통화를 싫어하는 이들이 꽤 있다.
친구 J는 전화 받는 걸 싫어해 내가 전화걸면 문자로 답한다. 옛 일터의 동료였던 B는 일하면서 만나는 무례한 사람들의 전화 때문에 한동안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안절부절 못했다. H는 전화로 배달주문을 하는 것조차 싫어했는데, 배달어플이 생긴 후로 삶의 질이 많이 높아졌다고 한다.
외출을 하면 나와 비슷한 벨소리를 설정해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 사람의 전화가 울리는데 내 전화인가 싶어서 가슴이 철렁할때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흔하지 않은 타악기 소리로 등록해놓았고, 사실 평소에는 무음모드로 해놓는다. 타악기 소리도 가끔은 거슬릴 때가 있는데 버스 같은 진동이 많은 곳에서는 차가 울리는 건지 전화가 울리는 건지 헷갈려서 괜히 핸드폰을 꺼냈다 넣었다 한다.
전화가 오면 좋은 일이 있을 때가 별로없다. 대출을 권유하는 광고 전화이거나, 일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하여 문자로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경우, 또는 가고싶지 않은 모임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하는 전화가 많다. 내가 너무 연락을 안한다고 잔뜩 삐진 엄마나, 왜 이렇게 늦냐고 짜증이 난 할머니도 자주 전화를 한다. 그 외에는 애인과 통화를 많이하는데 둘다 전화를 무음으로 해놔서 한 번에 전화를 받는 경우가 많이 없다.
전화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 긴장이 된다. 상대의 표정을 볼 수 있으면 어떤 상황이고 어떤 기분인지 가늠할 수 있는데, 전화기 반대편에서 다음엔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 신경이 쓰인다. 또 내가 할 말을 고르느라 다음 답변까지 시간이 길어질 때 상대방이 눈치를 못채고 그 다음 자기가 할 말을 이어서 해버리면 그것도 당황스럽다. 서로의 대화패턴을 잘 모르는 사람과 1:1로, 얼굴도 보지 않고 대화하는 것이 불안을 높인다.
편한 사람들과는 오랫동안 통화를 하기도 한다. 일 얘기, 연애 얘기, 가족 얘기를 1시간 2시간씩도 한다. 전화를 받으면서 정리정돈 같은 집안일을 동시에 할 때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전화가 오면 보통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만나서 얘기할 여건이 되지 않아 목소리로 소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할때, 상대방이 전화받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온기를 충분히 느끼고 싶어서다.
향후에 일이 많이 들어오면 나는 꼭 전화통화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을 고용해 전화받는 업무만 따로 줄 것이다. 개인전화는 정말 몇 안되는 사람의 번호만 가지고 있어서 전화가 울리면 언제나 기쁘게 받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