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원룸이 생겼다

by 권눈썹


내 자리는 사무실 입구 복도 자리에 있다.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 가느라, 입구에 있는 복합기를 사용하느라 내 자리를 지나간다. 민원이 없을때는 컴퓨터로 다른 일을 볼때도 있는데, 사실 직원들이 지나가면서 얼마든지 내 컴퓨터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불편했다. 또 불특정 민원인들이 불쑥 내 책상 옆으로 올 때마다 코로나 감염의 가능성 때문에 불안했다.


알바로 왔는데 많은 걸 요구할 수는 없으니 그냥저냥 지내다 가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센터장님이 몇 일 전부터 내 자리가 너무 오픈되어 있어서 신경쓰인다고 말씀하시더니 오늘은 아예 파티션을 놓아주셨다. 그리하여 원룸 비슷하게 아늑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직원들에게 업무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알기가 어려운데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곳은 정말 반듯하게 공부 열심히 하고 모난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같다. 직장이라는 또다른 학교에 있는 기분이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뮤지션, 댄서, 기획자들과 어울리다가 이 곳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재미있는 점도 있다.


전 지점 직원들이 서로 연락하는 메신저가 있는데, 본사에서 하루에 세 차례 정도 환기를 해라고 지침이 온다. 그리고 여기 직원은 그걸 정말 착실히 따르며 환기를 한다. 착한 나라의 착한 백성들이다.


오늘 내려온 지침에서는 전화민원을 일부 직원만 담당하는 바람에 그들에게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며, 다른 직원들이 전화를 분담하기를 당부했다. 신입 및 하급직원이 대응하기 보다 고참직원중심으로 어려운 일을 맡아달라고 했다. 또 기본적으로 모든 민원인에게 친절히 대하되, 강성 민원에 대해서는(욕설, 폭언, 반말, 성희롱 등을 하며 불쾌감을 주는 민원) 몇 차례 경고를 준 뒤, 통화를 종료하라고 했다. 직원보호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굵은 글씨체에 밑줄이 쫙 그어져서 왔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일하고 있었구나. 공기업 괜찮네.




나는 운이 좋게도 사람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 공부를 잘해서 반장으로 추천받았고, 여자니까 무거운 물건은 안 들어도 된다고 했다. 그런 대우가 싫었다. 반장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공부잘하는 것과는 큰 상관이 없으니까 리더십 있는 다른 친구가 맡기를 바랐다. 성별로는 여자이지만 무거운 물건을 남자보다 더 잘 드니까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없었다.


쉬운 길로 가는 것은 비겁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려운 길로 가야만 인생을 제대로 산다고 생각했다. (이름 풀이에서 내 이름이 사서 고생하는 이름이라고 했는데 이름을 바꿔야하는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이 나의 태도를 이용했고, 나도 거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전에 직장을 다닐때, 일을 좋아해도 오래 다니지 못했던 이유에 이런 성격도 한 몫을 했다. 못 할때는 못 한다고 적당히 끊어버리고 포기하면 되는데,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밀어부치다보니 무리가 되었다.


여기는 모든 업무에 대해 매뉴얼이 대여섯 장 씩 다 있다. 그리고 직원들이 일을 적절히 분담해서 하다보니 누구 한 명이 몰아서 야근을 하는 일도 많이 없다. 이렇게 일 하다보면 스스로에 대해서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내가 부족해서 해결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어려운 상황이 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그냥 이렇게 일할 수도 있는 건데 왜 죽기 살기로 일했을까.


사람의 마음은 어떤 때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처럼 모든 걸 해낼 용기가 생기기도 하지만, 또 유리처럼 쉽게 깨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마음이 깨어질때 나를 미워하지말고.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말을 걸고 싶다. 마음이 빨리 회복되지 않아도 나를 닦달하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음을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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