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by 권눈썹

일 년 만에 자작곡 수업을 재개했다. 부산퀴어문화플랫폼 ‘홍예당’에서 연락이 왔다. 자작곡 만들기 수업은 내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일이고, 동시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일이기도 하다. 설명을 많이 한 날에는 ‘템포가 너무 루즈하지는 않을까?’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봐주게 된 날에는 ‘누군가 소외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하며 분위기를 본다. 그렇게 2시간 정도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집에 오는 길에 꼭 맥주 한 캔을 사서 가게 된다.


이번에 참여한 멤버들은 극단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았고, 밴드 멤버로 활동했거나 음악을 만들어본 적 있는 분도 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익숙해, 창작도 수월하게 했다. (멤버 분들은 창작의 고통을 느끼며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모범생들이 공부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법. 이번 멤버들은 역대급으로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셨다.)

가장 큰 어려움은 나의 마음이었다. 막상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하겠다고 말해놓고, 수업 시작일이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오랜만에 하는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막연한 걱정이었다. 이제까지 진행한 수업은 내가 주최자 겸 강사였던 데 반해, 이번엔 섭외되어 간 자리라 담당자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무엇보다 퀴어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하게 될까 두려웠다.


공연할 때 중요한 것은 관객을 압도하는 것이다. 고운 음색으로 은근히 스며들게 하든, 강렬한 카리스마로 한방에 제압하든, 각자의 노하우로 사람들을 이 시간과 공간에 흠뻑 빠지게 해야 한다. 이것은 칼 박, 칼 음정을 지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지레 겁먹고 오른 무대는 본인도 불안하고, 관객도 당황스럽다. 멘트는 어리버리하게 하더라도 음악이 시작되면 당당하게 자신을 보여야 한다. 수업을 하나의 공연으로 생각하면, 나는 시작부터 페이스가 말려버린 셈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며 나의 어리숙한 면을 보고 멤버들이 놀리기도 하고, 매주 멤버들의 사랑스런 면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작곡이 하나, 둘 완성되면서 서로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또 누구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친밀함이 생겼다.



이번 수업은 ‘부캐 만들기’를 컨셉으로 진행되었다. 음악 만들기가 일회성 체험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뮤지션으로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상했다. 책과 같이 수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한 ‘정서점’, 음치-박치-몸치 3관왕 ‘최삼치’, 검은 봉지를 얼굴에 쓰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하는 ‘김봉지’ 외 알리, 쥐읒, 보리수, 채윤 이렇게 매력적인 7명의 캐릭터들이 탄생했다. 음악으로 투영된 멤버들의 모습에서 첫 만남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8주간의 수업이 마무리되고 자작곡 발표하는 공연을 했다. 반주하느라 악보를 봐야 해서 멤버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노래를 부르는 옆 얼굴에서 순간순간 행복한 에너지가 확 밀려오는 때가 있어 소름이 끼쳤다. 피아노 반주는 희진이 함께 해주었는데, 이제까지 여러 번 호흡을 맞춰본 표가 나는 게 ‘아 이렇게 치려고? 그래 그럼 내가 이렇게 해볼게...’하면서 말없이 서로 악기 연주 소리만으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신나게 연주했다.

뮤지션 친구들 생일을 축하하며 희진이 사다준 케잌...러브 ㅠㅠ

새싹 뮤지션 친구들은 처음 무대에 올랐으면서도 떠는 법이 없이, 관객과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애드립을 넣기도 하며 무대를 좌지우지 했다. 멤버들이 서로를 기특해하며 뭉클함을 느끼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이제 멤버들을 못 본다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다. 무대에 내려와 뒷풀이를 하며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 했다.


“저는 음악수업을 하면서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고,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이번엔 제가 너무 조심하고, 마음을 빨리 못 열였었던 것 같아서 아쉬워요.”


그러자 나와 비슷한 MBTI를 가진 서점이가 장난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

“눈썹쌤이 조심하는 게 느껴져서 한 번도 불편한 적 없었어요. INFP는 완벽주의성향이라 어떤 일 하나를 시작하는 게 엄청 힘든데, 매번 수업준비하실 때마다 기운을 많이 내서 하셨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간의 긴장이 이렇게 주고받는 다정스런 농담에서 다 녹았다. 그제야 나도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놀 수 있었다. 우리 자작곡들을 한 번 씩 다시 부르고, 각자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었다.


이런 식으로 놀아본 게 처음이라고 너무 재밌다는 멤버도 있었고, 기타를 혼자서만 치고 보여줄 일이 없으니 기타에 대한 애정이 정체되는 것 같다며 애창곡을 끊임없이 불러준 친구도 있었다. 우리 안에 이렇게 음악이 가득했다니. 내가 왜 음악을 좋아했었는지 자연히 알게 되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며 한 명씩 안아보는데 마음이 다 전해지는 것 같았다.


집에 가는 길에 여덟 명 친구들이 내 장비를 하나 두 개씩 챙겨서 쭈루룩 내려왔다. 택시에 물건을 다 실어주어 나는 애틋한 마음이 되어 기쁘게 작업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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