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번아웃은 아웃! 마음관리 노하우

by 권눈썹

소람이가 울산에 오게 되어 잠깐 만났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영감영감' 이라는 비건카페에 방문했다. 그 카페는 뮤지션 소영님이 운영하는 곳으로, 공연장을 겸하는 곳이다. 내부는 소영님이 여행지에서 하나씩 모은 물건과 식물들로 꾸며져 있다. 사진만 봐도 분명히 내 마음에 들 것 같았다. 소영님과는 인스타그램으로 친구가 맺어져있고, 내 계정에 좋아요도 가끔 눌러주셔서 내적으로는 나름대로 친밀했다. 이번 기회에 인사해야겠다 싶어 가사집을 챙겨서 방문했다. 어색해서 곧바로 인사하지는 못하고 음료를 시켜놓고 소람이랑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혹시 눈썹님이세요?'하고 아는 체를 해주셨다. 실제로는 처음봐서 못 알아봤다고 하면서. 못 알아보실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인사해주니 정말 고맙고 반가웠다.


버스내려서 걷는 5분 정도 짧은 순간에 친구의 스토리를 보고 부러워하고, 나와 비교하며 스트레스 받고 있었는데.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이런 삶이 정말 멋이지'하는 생각과 함께 불안과 짜증이 잦아 들었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곳까지 잘 정돈되어, 구석구석 들인 정성과 시간이 느껴졌다. 소영님의 취향이 담긴 작은 물건들에서 느껴지는 미적감각이나, 메뉴판의 유머감각을 보며 소영님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게 되었다. 빈티지한 물건을 좋아하는 취향도 나와 비슷해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이런 공간을 마련할거 같다' 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제대로 뭔가 해보려면 이 정도 크기의 공간은 마련하는 게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일의 규모를 키우는데 너무 겁을 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소람이가 급한 업무를 보는 동안, 우리는 음악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SNS를 통해 내가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열심히 한다고 에너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며, 자기는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겸손하게 얘기하셨다. (이야기 나눌 당시도 지원사업 결과보고서를 쓰시느라 바쁘신 와중이었는데... 열심히 하지 않으신다니요..) 울산의 인디씬은 부산과 비교하면 넓지 않아서 기회는 많지만, 그만큼 답답함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잘됐다싶어 냉큼 부산오셔서 퍼플문에서 한번 공연하자고 이야기했다. 울산 영감영감에서 한번, 부산 퍼플문에서 한번 해서 교류공연을 해보면 어떠냐고. 소영님도 흔쾌히 좋다고 하셔서 내년 초에 추진하기로 이야기했다.


소영님이 나에게 -열심히 음악활동하는 게 대단하다-해주신 말씀을 곱씹으며 돌아보니, 이번 해는 번아웃을 겪지 않고 지나갔다. 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보통 번아웃이 패키지로 왔는데 올해는 무사히 지나갈 것 같다. 올해 여러가지 보람된 일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앞에 내놓을 만한 자랑스러운 성과다. 바닥에 누워 울면서 건강해지고 싶다. 기운을 내고 싶다.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난다. 이제 내 마음을 관리하는데 어느정도 노하우가 생겼나보다.


올해 큰 괴로움 없이 이렇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지난해 인간관계로 인해 큰 고통을 받고 3개월 동안 심리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화가 날때 화내야 한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붙들어 놓지 않아야 한다/사람이 미운 이유는 그에게서 인정을 받고싶어서이다-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는 인간관계에서 의존하기보단 스스로 행복을 찾기로, 나의 행복을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놓기로 결심했다.


또 올 초에 신년운을 점쳐보려 사주를 보러 갔었는데, 내년이 대운이고 올해부터 운기가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주는 통계일 뿐이라 참고만 하라고 하지만 그 말이 왠지 믿어져서(혹은 믿고 싶어서) 올해는 내년을 대비하여 공부도 많이하고 실력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늘 보이지 않는 뭔가가 발목을 잡고 있어 생각과 몸이 따로 논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것을 하는데 두려움이 많이 없었다. 어차피 내년에 대박날꺼니까 지금은 저축하듯이 차곡차곡 노력을 쌓으면 된다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많이 흘러갔다.


그리고 작업실에 새로운 멤버 반달이와 네티가 들어오면서 혼자있던 생활에 활력이 되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작업하고 있노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지 회의감이 많았는데, 반달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인기를 얻고,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며 희망을 갖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변화가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하고 작품이 좋으면 눈밝은 이들은 알아보겠구나 하는 희망. 윤작가도 작년보다 더 자주 작업실에 오면서 각자 외로이 작업하던 프리랜서 친구들끼리 또 하나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요즘은 일하는 게 재미있고,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다. 사람들에게 나를, 내 일을 소개하는 것에도 거침이 없어졌다. 공연횟수가 많아지면서 음악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올라왔다. 내 열정은 20대에 다 써버린 줄 알았는데, 사사로운 일에 고민이 없어지니까 본연의 업무에 집중이 잘 된다.


아 내년이 오는 게 기대가 된다. 나이가 드는 게 기대된다. 매년 활동반경이 넓어질 것 같고, 더 재미있어질 것 같아서.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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