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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Nov 23. 2022

인도 여행기_매일 먹고 자는데만 집중

2019년 3월 21일 인도 6일째, Varanasi


오늘은 홀리축제날. 봄이 오는 무렵 열리는 색의 축제라고 한다. 어제 낯선 청년의 터치때문에 불쾌했고, 가만히 지나다니기만 해도 주목받는 시선 때문에 축제에 나가기 싫었다. 물감을 얼굴 뿐 아니라 몸에 바른다고 하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옥상에 잠깐 나갔는데 장난스럽게 물감을 던지는 사람들 때문에 콩순이가 기분이 상했다. 그냥 방에 들어와서 나는 짓던 노래를 마무리하고 콩순이는 글을 썼다. 오후 2시쯤 홀리축제가 끝날무렵 밖을 나섰다.


홀리가 끝났는데도 사람들은 잔뜩 흥겨운 모습이었다. 얼굴에 알록달록 칠을하고 장난치고 싶은 표정으로 사람들이 걸어다녔다. 옆으로 누워서 자는 강아지들도 물감으로 얼굴이 알록달록했다. 길에는 대부분 남자들 뿐이었다. 인도에서 나는 수드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느낌이다. 뚫어져라 이쪽을 쳐다보는 눈길이 한국에서는 받아본 적 없는 것이었다. 만약 저렇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더라면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한 마디를 할 수 있었곘지. 함부로 쳐다보는 시선에서 어떻게 사기를 쳐볼까 하는 의도가 느껴졌다. 

축제라고 식당들도 문을 다 닫았다. 결국 자리잡은 곳은 처음 가본 식당이었다. 오늘은 조금 깔끔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인도음식은 그 나라의 모습이 그렇듯 수많은 향신료가 섞여있어서 맛이 복잡하다. 게다가 어두운 골목을 누비며 깔끔하지 못한 장면을 많이 마주쳤던터라 음식이 청결할지 아닐지 늘 찜찜했다. 그래서 오늘 메뉴는 무난한 것을 택했다. 나는 계란 토스트, 콩순이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주문했다. 계란 토스트는 구운 빵 사이에 삶은 계란이 들어있는 타입이었다. 간이 밋밋해서 때가 꼬질꼬질한 병에 들어있는 케찹을 뿌려 먹었다. 알리오 올리오는 더 가관이었다. 마카로니면에 올리브오일과 마늘향을 내서 볶아서 나왔는데.. 아무리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이정도는 하겠다 싶었다. 결국 반도 못먹고 나왔다. 이제까지 먹은 알리오올리오 중에 단연코 최악이었다. 그 와중에 옆에 앉은 서양 남자는 우리랑 같은 스파게티에 토마토 소스가 올라간 음식을 시켰는데 잘도 먹더라. 내가 입맛이 까다롭나. 정말 못먹겠던데... 


아침에 마주친 무례한 남자들의 시선, 그리고 아무렇게나 차려준 식당의 식사 때문에 기분이 너무 상했다. 눈물이 날 것처럼 속상했다. 결국 문 연 식당을 찾다가 한인식당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라면이랑 야채 오므라이스를 먹는데 좀 마음이 달래졌다. 식당에는 골목을 오가며 마주쳤던 한국인들이 앉아있었다. 그 사람들은 맨날 여기 오는 것처럼 익숙해보였는데, 그 모습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관광객의 입장으로 자기 좋은것만 맞춰하려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나도 도망쳐서 여기로 온 주제에^^;)

아까 숙소 나올때 봤던, 우리아빠 연배의 아저씨를 봤다. 외로워보이셨다. 한국청년들과 말을 나누고 있었는데 옛날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흥미롭기도 했지만 계속 듣고싶은 말은 아니었다. 콩순이는 자기도 늙어서 아무도 자기 얘길 안들어주면 어떡할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옛날이야기를 물어보면 모른다고 말하게 된다고. 콩순이와 다니니까 느낌에 대해 설명하는 단어를 열심히 고르게 된다. 열심히 고른 단어를 콩순이가 이해하고 공감해주면 기분이 정말 행복해진다. 


이때 만난 아저씨를 떠올리며 지은 곡입니다. 그림자맨!(링크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BaPjMTjmPbI


식사를 마치고 개운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 강가로 나갔다. 오전에는 남성분들만 보이더니만, 저녁엔 여성분들이 여러명 우르르 나와있었다. 가짜 사두같은 재미난 사람들을 보다가 아씨가트로 갔다. 그곳에서 힌두대학교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어, 그 친구들이 내일 학교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다. 걷다보니 넓고 한적하고 여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모인 광장같은 장소가 나왔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많이 보여서 좀 덜 경계하게 되었다. 다시 여행할 기분이 나서 기분좋게 들어왔다. 그래도 인도음식은 못먹겠어서 숙소 근처 다른 한식당에서 주먹밥, 레몬에이드, 프렌치 토스트를 저녁으로 먹었다.


내일은 무슨꿈을 꾸게 될까. 여행을 다니니까 매일 그냥 잘 사는데만 집중하게 된다. 이런 감각은 아주 오랫만에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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