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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Nov 28. 2022

인도여행기_프라블럼 속 노 프라블럼

2019년 4월 8일, Dharamsala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1위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은 어려움이 생겨도 가볍게 이겨내는 긍정적인 주문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생긴 마찰에서도 적용이 된다. 약속한 말을 바꾸거나, 버스 출발시간이 한참 연착되어도 언제나 '노 프라블럼'이다. 아니.. 서로가 동의해야 '노 프라블럼'아닌가요? 그리하여 인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상대방 실수일거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식당에서 오믈렛을 시켰다. 우리는 한국식 오므라이스를 생각했는데 쌀이 없이 계란만 나와서 응? 이게 맞나싶어 직원을 불러 제대로 나온 게 맞는지 물었다. 직원은 정색을 하며 오믈렛이 뭔지 모르냐고 비웃었다. 면전에서 무시를 당하니 창피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어쨌든 음식이 잘못 나온것은 아니었고, 입싸움 해봤자 기운만 빠질 것 같아서 꾹 참고 식사를 했다. 콩순이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불안함이 최대치였다.

좌측은 빈대떡이 아니고.. 오물렛. 우측은 콩순이의 충전기 상태

오늘 아침 2 침대를 쓰던 콩순이 핸드폰이 떨어졌다.  충전 부위에 충전기 단자가 붙은채로 바닥으로 .  핸드폰은 이미 외부액정이 깨진  오래되어 테이프로 급히 보수공사를  터로, 고장이 나도 크게 아까울 정도의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콩순이는 활기찼던 아침의 얼굴빛이 금새 비오는  흐린 빛으로 바뀌었다. 기록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는데 백업이 안되서 모든 자료가 날아갈까봐 심란해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문제가 아니어서 마음을 놓았지만 아침에 기운을 빼버려서 오늘 하루는 조금 쉬어야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박수폭포로 향했다. 홀가분하고 기분 좋았다. 이곳을 제대로 느끼면서 충만하게 보내고 싶은데, 콩순이가 안절부절 못하는 통에  에너지도 흔들리는  같아서 불만스러웠던 차였다.


콩순이에게 기록이란 어떤 의미일까? 콩순이를 보며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화하다보면 내가 그냥 흘려보낸 감정들이 중요한 것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소한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함께 예뻐하고 즐거워할  있어 좋다. 여행하면서  점이 좋기도 하지만 가끔 참기 어렵다. 작은 일에 아주 기뻐하고 작은 일에 많이 괴로워하는 콩순이가 때론 어린아이 같다.


박수폭포로 가는 길을 알려준, '바부'라는 인도친구는 쪼리를 신고도 산을 다람쥐처럼 날쎄게 탔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도 미끄러질까봐 기겁하며 산을 주섬주섬 걸어올라갔다. 바부는 어느정도 길을 안내해주고는 왔던 길로 도로 돌아갔다. 그가 안내해준 길은 관광객이 다닐만한 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분명히 아래로 내려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 아래가 어딘지 모르고 막 내려가다가 황천길로 갈뻔 했다. 역시 신이 내린 길치! 길을 찾는데 있어서 나의 육감은 언제나 멍하다.


산 길에는 처음보는 식물들이 깔려있었다. 잎이 뾰족뾰족한 것이, 밟았다가는 내 발을 확 물어버릴 것 같았다. 최대한 위험해보이는 친구들을 안 밟는 방향으로 발을 요리조리 놓으면서 걸었다. 아래에서는 강물의 시원함이 느껴졌다. 시원하게 굴러떨어져 강물과 하나가 되는 게 아닐지 섬뜩한 상상이 생생히 떠올랐다.


걸으면서 내일 트리윤 산행은 포기해야할까 생각했다. 등산화도 아니고, 산행을 계획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왕복 4-5시간이면 가능할것같은데 12시간정도면 좀 무섭다. 그러면서 자포자기하는 습관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 산행을 하는 것이 맞을까? 이것은 오기일까 용기일까?

좌측은 박수폭포, 우측은 그 유명한 메기라면

겨우 도착한 곳에서 쨔이 한잔과 메기라면을 켰다. 한숨 돌리는 차에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내가 주문한 라면을 가리키며 본인도 먹고싶다는 표현을 했다.  돈이 아니지만 이렇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돈을 줬다가 계속해서  많은  요구할까봐 응하고싶지 않았다. 나에게 돈을 뜯어내는  얼른 포기하고 딴데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손을 합장하고 쏘리~ 라고 하고 지나갔다.


주문한 음식을 먹고 산길을 이동하는데 뒤에서 ‘짜파티(인도에서 즐겨먹는 빵)~ 메기(인도의 라면 브랜드이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사람이다. 무안함과 함께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목숨을 무릅쓰고 박수폭포에 왔는데 힘들게 찾은 평화를 깨트리다니. 그때부터는 나도 전략을 썼다. 혼자 다니는 외국인 여자라고 돈도 많고 마음이 약할 거라고 생각하는것 같아서, 인도 가족들 사이에 섞여서 폭포 쪽으로 갔다. 폭포에 도착해서도 잠깐 한눈 판 사이에 그 사람이 옆에 왔다. 식겁했다. 나는 죄송하다고 하고 얼른 강의 맞은 편으로 넘어갔다.


건장해보이는 인도 남자분들 뒤에 숨었다. 여기까진 아무래도 못찾아오겠지. 사진찍고 잠깐  생각하다가 아까  사람이 있던 곳을 둘러보니 이미 새로운 타겟을 정한  같았다. 폭포 근처 카페에서 식사하고있는 서양여자 분이 걸렸다. 그렇지만 그렇게 순탄하진 않아보였다. 우물쭈물하는 동안 여자분은 고개를  돌린 채였다. 그렇게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사람이  내쪽으로 넘어왔다. 오늘은 정말 나한테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기로 결심한 것일까.


박수폭포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기다릴까봐 겁나서 시는 못오겠다. 핸드폰으로 쓰던 글을 멈추고 분위기를 살폈다. 그렇지만 여러번 거절을 당해서 민망했는지, 이제는 아까처럼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폭포를 보는척 하며 주위를 서성였다. 이제 더이상 폭포가 나에게 의미가 없어졌다.


쾌남포즈를 취하며 셀카찍는 인도남자들 사이에 숨어 도망칠 기회만 노렸다. 배고픔이라는 중차대한 위협에 놓인 남자와 좋은 공기마시며 여행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 .  사이 숨바꼭질은 나의 줄행랑으로 끝났다.  사람이 배고픔에 여기저기 기웃거릴때 고상하게 글이나 쓰고 있던  어쩐지 민망스러웠다. TV 나오는 것처럼 '명상과 평화가 깃든 힐링여행' 이런  하고 싶었나보다.


사람은 원래 자기만 생각한다. '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말은 거짓말일 때가 많다.   이면에는 상대에 대한  기대가 스며들어있다. 누구나 제각기 다른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기에 세상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노골적일 뿐이다.'명상과 평화가 깃든 힐링여행' 대체 세상 어디에 있겠나. ‘ 프라블럼' 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해프닝이 ' 프라블럼'이다.  시간을 확보하고 싶다는 마음도 ' 프라블럼' 핸드폰 고장났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 프라블럼' 거절당하고도 계속해서 나를 쫓아오는 사람의 마음도 ' 프라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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