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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Dec 05. 2022

오락부장의 비애

처음 음악을 만들기 시작할때는 서정적이고 조용한 것을 만들었다. 그런데 행사 섭외를 받아 센치한 노래를 부르면 분위기가 착 가라앉는다. 분위기 띄워야 하는 자리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마음이 쓰다. 그래서 점점 신나는 노래를 많이 만들기 시작했고, 감성적인 노래를 부르면 금새 마음이 우울해져 혼자 있을때도 신나는 노래 위주로 부르게 되었다.


남몰래 좋아하는 부산 뮤지션 H씨가 있다. 여백이 많은 음악을 하는 분이다. 느린 템포의 노래를 부르려면 마음이 여유로워야 한다. 집중력이 좋아야한다. 그래서 사실 빠른 곡보다 느린 곡이 소화하기 더 어렵다.


H는 주위를 자기 색으로 차분하게 물들이는 능력을 가졌다. 언제부턴가 H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리면서 음악을 찾아 들어봤는데 순간적으로 집중시키는 카리스마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래 이런 분이야말로 이런 음악을 해야하구나. 역시 나는 서정적인 음악은 내려놓아야겠군.


H의 최근 공연영상을 보았다. 멘트도 하나 없이 무대를 채웠다.  나는 공연에서 늘 '나 좀 봐줘요. 나 재밌죠?' 어필을 하며 누구 한명이라도 쿡 웃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예뻐해달라 아부도 없이 분위기를 끌고 가는게 정말 대단했다. 부러워 배가 아팠다. 오락부장의 비애다. 누가 웃겨달라하지 않았는데, 행사에 가서도 그냥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데. 왜 눈치를 볼까?


음악이 아름다워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감상하는 것이 인생 최대 기쁨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음악감상에 집중이 잘 안된다. 음악이 생업이 되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그동안 음악경험이 충분히 영글지 않았는데 자꾸 결과를 먼저 보고싶어했다. 퀄리티가 어떻든 일단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면 내가 나를 좀 더 신뢰하게 될 것 같아서 그랬다. 덕분에 어떤부분에 자신감을 쌓기도 했지만,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내 호기심에 따라 깊이 들어가는 게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렇게 해야지만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음악인들과 어울리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하나같이 특이하다. 유난히 진지한 사람도 있고. 아주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도 있고. 매우 느린 사람도 있다. 그들 사이에 있으면 나만 유달리 독특한 건 아니라는 걸 느낀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만큼 다른 사람의 독특한 점도 그러려니하고 내버려두는 태도가 나를 안심시킨다.


모두들 자기 마음의 끌림에 따라 다소 엉뚱해보이는 길이라도 열심히 파는 사람들이다. 길이 깊어질수록 자기의 색이 선명해진다.


청소년 시절처럼 좋은 음악을 순수하게 쫓아가며 사치를 누리다보면 한없이 가벼운 오락부장도 어느날은 깊이있는 메시지를 툭 던지는 날이 올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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