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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Dec 06. 2022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2019년 4월 6일, Rishkesh>Dharamsala


리시케시에서 여덟 밤을 보냈다. 이틀은 아팠다. 나머지 날들은 요가를 하고, 채식요리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리시케시를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갠지스강에서 물놀이를 했다. 나는 우쿨렐레, 콩순이는 그림도구를 챙겨서 나왔다. 물이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몸은 상쾌했다. 현지 사람들도 많이 놀러나왔다. 리시케시는 인도인들에게도 유명한 휴양지라고 한다. 며칠 지냈다고 동네 나들이 간 것처럼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바나나를 먹는데 원숭이가 콩순이의 손에서 확 낚아채갔다. 껍질까지 와자작 맛있게도 먹었다. 원숭이에게 보시했으니 앞으로 여행을 안전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수영을 마치고 콩순이는 마사지를 받으러 가고, 나는 집에서 씻고 과일깎고 빨래 해놓고,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콩순이의 빨래도 걷어서 개어놓고 기다렸다. 콩순이가 느즈막히 돌아와서 이것저것 챙겨나가는데 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차 시간이 4시이고, 터미널까지 시간이 2시간 반에서 3시간 남짓 걸리는데 1시에도 출발하지 못하고 있어서 점점 초조해졌다. 초행길인데 헤매다 차를 놓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바쁜 상황이었지만 같이 지내던 아쉬람 사람들과 작별인사는 하고 가야했다.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잠깐이라도 인사나눈 친구들은 다정하게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 4시 정각에 겨우 도착했다. 다행히 버스는 떠나지 않았지만 우왕좌왕 분위기가 이상했다. 버스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자리에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한 자리에 두 사람이 중복으로 예약되었던 모양이다. 기사에게 물으니 미리 앉아있던 사람들의 표를 체크했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표가 확정된 것이 아니었으니, 일어나서 기사좌석 옆에 앉으라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항의하며 여행사에 전화해서 문제를 해결해라고 했다. 화를 바락바락내던 버스 매니저는 전화통화를 하더니 왠일인지 수긍했고, 곧바로 타겟을 우리로 바꾸었다. 어쩌면 확정표 같은 것은 아무 상관없었을지도. 그냥 만만한 사람 잡아서 우기는 것이었나보다. 조금 있다가 버스에 오른 승객에게도 같은 요구를 했다. 나중에는 우리에게 돈을 내줄테니 지금 내리거나, 마날리로 가는 버스를 타라고 말했다. 점점 기막힐 노릇이었다. 우리쪽 여행사에도 전화를 했지만 일 잘해보이던 아저씨도 2킬로 가까이 떨어진 이 버스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승객 몇명이 대표로 버스 밖으로 나와 기사에게 항의했고, 콩순이도 그 무리에 끼였다. 나는 조용히 있고 싶었지만 자리도 없는 버스 안에 어정쩡하게 있는것도 무안해서 따라나섰다. 버스기사는 모르쇠로 일관하다 휴게실에 가서 아예 드러누워버렸다. 소득없이 시간이 계속 딜레이되자 몇몇 사람들이 지쳐 자리를 떴고, 억울함을 그대로 싣고 버스는 움직였다. 지연출발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없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때마다 여행객으로서 적절한 태도에 대해 늘 고민하게 된다. 고민하는 와중 우리는 호구 잡히고 무시 당한다. 나는 여행객 신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여 어느정도 바가지 쓰는 것은 그러려니 한다. 만에 하나 싸움이라도 붙으면 아무리 상대방 잘못이라해도 현지인들은 외국인인 내 편을 들지 않을 것이다. 해코지 당할까봐 무서운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내가 조금 손해봐도 그들에게는 행운이 될수도 있어서 그냥 넘어가고 싶다. 콩순이는 입장이 좀 달라보였다. 문화적 차이와 상관없이, 인간적으로 무례한 대우를 하는 건 용납하면 안된다고 했다. 오늘뿐만 아니라 툭툭기사나 길거리 상인들이 바가지 씌울때도 콩순이는 정색을 했다. 그때마다 싸움이 날까봐 조마조마했지만 매번 콩순이가 기싸움에서 이겼던 것인지, 각자가 얼마만큼 화를 내도 되는지 그 기준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 잘 넘어갔다. 


여행지에서 콩순이는 원하는 것은 꼭 한다. 꼭 가고 싶었던 곳에 가고, 꼭 갖고 싶은 것을 산다. 상황에 맞추어 그럭저럭 넘어가길 바라는 나와 너무 다르다. 오늘 버스 터미널로 초조한 마음으로 이동하면서, '콩순이가 마사지는 안받았으면 좋았을 걸. 짐을 미리 쌌으면 좋았을 걸. 친구들과 인사는 짧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속으로 원망을 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지고 콩순이가 사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엄청나게 큰 사람으로 보였다. 그 무리에서 나만 소심했다. 


콩순이에게 늘 배운다. 하고싶은 것은 반드시 하고. 요구해야할 일은 반드시 요구해야한다. 지금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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