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만나지 않아도, 멀리 있어도 신선한 자극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창작하는 모임에서 만난 인연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언니를 처음 알게된 지 벌써 4년째다. 내가 운영하는 자작곡 모임 '메마뮤'에서 언니를 알게 되었다. 모임에서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에 사적인 정보를 주고 받지 않는다. 몇년을 알아도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처음 둘이서 점심을 먹었을때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나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모임이 끝난 후에도 꾸준히 언니가 공연을 보러와주셨고, 때마다 먼저 연락을 주셨다. 나는 언니가 악기연주하는 장면을 종종 SNS에 올릴 때 '언니 짱!'이렇게 DM을 보내며 느슨하게 인연을 이어갔다.
첫 음반을 발표하고 프로모션을 위해 051FM 인디음악방송에 나가게 되었다. 누군가와 같이 가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았다. 팬클럽 회장님이 시간이 안된다고 했을때 바로 떠오른 사람이 언니였다. 음악도 좋아하고, 리액션도 잘하고, 언제나 나에게 힘을 주는 언니. 언니에게 같이 방송에 나가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수락했다.
언니는 '권눈썹 팬클럽 남구지부장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이라는 다소 긴 닉네임으로 출연했다. 나는 몇 개월 만에 공적인 자리에 나가는 것이라 어색했는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좋았을텐데 '작업이 너무 힘들었어요...' 하고 우는 소리만 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언니가 계속 '아니에요. 눈썹이가 제일 잘하고 제일 멋있어'류의 이야기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셔서 기운내서 방송을 했다. 방송 말미에 DJ들이 오늘 소감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나는 언니에게 용기내어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언제나 일방향적으로 아껴주고 좋아해줘서 진짜 고맙고, 이 마음을 어떻게 언니에게 갚아야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고마워요"
이에 대한 언니의 답변은 부스에 있었던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나만의 노래를 만들 수 있게 해준 것. 그 기회를 준 것에 너무 감사하고. 뭘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나니까 눈썹 인생 자체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말로 천냥 빚 갚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빚이 늘어버렸다. 나는 애인에게도 저런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사랑을 주는 데에도 타고난 재능이라는 게 있는걸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이어서 언니가 "감동의 정도가 거의 합동결혼식 수준이죠?"하고 능청을 떠는 바람에 도로 쏙 들어갔다. 유머 유전자도 금수저. 역시 비범한 인물이다.
방송을 마치고 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돌아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이어갔다. 인간관계가 힘들어 음반작업을 하며 그동안 숨어지냈다며 넋두리를 했다.
나 : "어릴 때는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아요. 선의를 오해하고 이유없이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세상에 또 없이 가깝다가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요.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게 겁나요."
언니 : "관계는 식물을 키우는 거랑 같아요.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썩어버리죠. 인간관계에서 관심도 적당한 게 좋은거에요. 그래도 나는 언제나 눈썹한테 주기만 할테니. 나중에 어떻게 바뀔까 걱정하지말고 늘 받기만 해도되요."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툭툭 던지는 말에서 마음의 울림을 주는 그녀. 그래서 언니는 '고마운 사람' '만나면 유쾌한 사람' '힘을 주는 사람' 으로 마음에 새겨져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빛내주는데 탁월한 언니는 최근엔 자기 안에서 흘러나온 빛으로 번쩍번쩍한다. 언니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악기도 세개나 배우고, 운동도 세 네개 씩 한다. 사실 전부터 창작에 대한 열망을 내비치곤 했다. 제작자가 되고 싶다고도 하고, 밴드를 하고 싶다고도 하고, 책을 내고 싶다고 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작년에 둘이 마지막으로 만났을때 "자아실현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자!"하고 입을 모았다. 그 후로 사업하시는 분들과 스터디를 하는 것 같더니, '어싱스타'라는 계정으로 사람들에게 어싱의 매력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싱스타 헬스장'을 열어 줌으로 홈트를 하고 회비를 전액 기부하는 프로젝트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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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언니의 직업도 알게 되었다. 언니는 언어치료사로, 그룹치료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분이다. 이번엔 전문지식을 살려 전자책도 내고, 컨설팅도 시작했다. 4월엔 자기개발 관련 강의도 한다. 워낙 다방면에 관심도 많고 잘하는 것도 많아서 불이 붙기 시작한 지금 끝도없이 능력을 펼쳐나가나보다. 사람을 아끼고 응원해온 덕이 많이 쌓였으니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언니를 도와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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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차 치료사 선배가 착하고 열심히 살기만 하는 임상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담겨있어요 초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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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빠르게 성장하는지 신기해서 하게된 전화통화에서 언니는 뼈 때리는 말로 나를 깨워주었다.
나 : "원랜 매일 창작하는데에만 시간을 다 투자할 수 있었는데 요즘 학교 수업때문에 매일 2시간 씩 오후에 나가니까. 데드라인을 안 잡아놓으면 이도저도 안되겠더라고요."
언니 : "하루에 두시간이라니. 그렇게 일해서 생활이 되는 걸 감사히 생각하고 체력을 길러서 더 열심히 창작에 투자하세요."
그래.. 맞지.. 내가 너무 방만하게 인생을 살아온 거지. 달려나가는 언니를 보니 나도 창작에 대한 의욕이 다시 끓어오른다. 다음에 만날 땐 언니를 깜짝 놀라게 할 소식을 가지고 나타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