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첫 출근은 초등학교 1, 2학년 돌봄교실 수업이었다.
한 번에 20명을 만나게 되는데 이름은 어떻게 외울지, 수업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잘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전날 초등학교 교사인 유진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는 "괜찮아 잘 할거야. 애들 자기 이름 몰라도 크게 신경 안쓴다." 하며 수업에 대해서는 잠깐 이야기하고는 다른 내용으로 수다 떨다 전화를 끊었다.
교실에는 10분 전에 도착했다. 어떻게 저렇게 자그만 인간이 있나 싶은 어린이들이 맞이해주었다. 수업시간 동안 담임 선생님은 잠깐 다른 곳에 나가계실 줄 알았는데 수업 내내 교실에 함께 계셨다. 더욱 어색한 기분이 되어 준비한 거 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초조했다. 반대로 목소리는 자신만만하게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 * * 선생님이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생님 얼굴에 별명이 있는데, 그게 뭔지 맞춰볼 사람?"
"째려보는 눈빛이요!"
정답은 아니었지만 예리한 눈썰미에 웃음이 터졌다. 장난칠때마다 살짝 흘겨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새 들켰네^^ 첫 시간 커리큘럼은 '몸 동작하며 자기소개하기' 였다. 수업은 준비한대로 착착 진행되지는 않았다.
"(눈썹을 검지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시늉하며)저는 눈썹이에요~ 당신은 누구신가요? 이렇게 동작을 하면서 별명으로 자기소개하는 거에요. 자, **학생부터 시작해볼까요?"
"저는 별명 없는데요"
"저는 귀요미 인데요?"
"저 발차기 잘해요"
내가 한 마디 하면 세 마디, 네 마디 이어지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머리가 혼미해졌다. 내가 학생때도 이런 혼란 속에서 선생님이 고군분투하셨겠지? 순서대로 진행하는 것은 포기하고, 먼저 하고 싶은 학생이 스타트를 끊고 다음 순서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눈에 띄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보였고, 자기에게 순서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듯 고개를 벽으로 돌리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도 처음이라 더 과장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숨기도 하나보다.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참여했으면 좋겠는데 익숙해지면 서로 더 자연스러워지겠지?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면서 수업을 이어나갔다. 수업 시간은 50분으로, 초등학생들이 집중하기엔 긴 시간이었다. 사실 어른들에게도 상당히 긴 시간이다. 이제 시간 다 되어가나 싶어 시계를 봤는데 겨우 30분이 지나 있었다. 준비한대로 잘 진행되었다면 시간에 딱 맞춰서 끝났을텐데 휴. 어쩔 수 없이 비장의 무기인 우쿨렐레를 꺼냈다. 미발표 자작곡인 '퍼플문'을 들려주었다.
"선생님은 음악을 만들고 노래도 부르는 음악가인데요. 선생님이 만든 노래를 불러줄거에요. 들어보고 제목이 무엇인지 맞춰보아요."
시끄럽던 학생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일순 조용해졌다. 어떤 학생들은 고개를 흔들 흔들하고 또 다른 학생은 손으로 박자에 맞춰 음악을 즐겼다. 제목 퀴즈에서는 신선한 의견이 많았다.
"보라색 돌의 소풍이요" ('보라색 달' 이라는 가사를 '돌'로 들었구나. 여행의 느낌을 받았구나.)
"보라색 뱀의 여행이요" (도미넌트 코드가 좀 신비한 느낌이 있지. 뱀의 이야기라니 동화같아.)
"호숫가의 캠핑이요" (가사에 하나도 없었던 내용인데, 캠핑에 간 것처럼 자연 속에 있는 느낌도 받을 수 있겠다.)
이 곡 제목을 짓느라 꽤 고생했었는데 다음엔 학생들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봐야겠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수성은 연령과 상관없이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학생은 진지한 목소리로 "선생님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시면 1등 하실 거 같아요." 하고 칭찬해주었다.
뒤이어 옆 반 수업까지 마치고 녹초가 된 채 커피숍으로 겨우 들어가 디카페인 라떼를 시켜놓고 소파에 앉았다. 매일 마시던 커피인데 오늘따라 더 고소했다. 미량의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을 주는구나. 내 정신을 빼놓는 사랑스러운 어린이들과 앞으로가 기대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Ujbk30eF78&t=11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