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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Jul 28. 2016

성장하는 사람들 이야기 (3)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수밖에


부족해서 미안했다. 타인에게 또 나에게. 하지만 정말 미안해야 할 것은 나를 부족하게 여기는 마음이었다. 그건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에 대해서도, 이제까지 어떻게든 잘 살아내고자했던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예의가 아닌 일이었다. 친구를 속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거라고.








어떻게 된 일일까.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는다. 준비한 자료를 설명한 후 다같이 워크시트를 작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며 상호 피드백의 시간을 가진다ㅡ얼마나 멋진 계획인가. 밤늦은 시간까지 준비한 아름다운 발표자료와 프린트물을 열심히 설명하고 같이 빈칸도 열심히 채웠다. 그런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것이다. 게다가 왠지 표정들도 어두웠다.


당황을 들키면 더 긴장할 것 같아서 평안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지만 머리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설명이 부족했던걸까? 자료가 부실했나? 주제가 마음에 안 드는건가? 더워서 그런가? 장소가 불편한걸까? 다음에는 다른 장소에서 해야하나? 그럼 어디? 장소를 변경하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는데 이건 또 어떻게 상의해야하지? 낯을 가리는건가? 내가 뭘 잘못한걸까? 배가 고파서? 목이 말라서? ..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하다보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건지도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휘청거리다 한발만 더 나가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았던 순간, 초롱초롱한 사람들의 눈빛이 보였다. 이 무더운날 나를 믿고 여기까지 와준 마음을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들자 혼란스럽던 머리가 일순 차분해졌다. 근거없는 억측은 제외. 이미 벌어진 일이라 바꿀 수 없는것도 제외.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것도 제외. 그렇게 하나 둘 지워나가다보니 문득 한 가지의 이유만 남았던거다.


나 혼자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오로지 나 자신을 바꾸는것밖에 없었다. 물을 마신다는 핑계로 주저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 뒤로 흐르는 잠깐의 침묵. 그리고 그 공백을 채워가는 말소리들. 그 날 사람들은 3시간을 웃고 대화하며 마음껏 즐거워하다 돌아갔다. 아무말 없이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즐거웠다.



달다구리를 먹으며 자신만의 레이스를 한걸음한걸음. 따로 또 같이.






그런 일이 있은 후 일주일동안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모임장으로서 어떻게 모임을 '잘' 이끌어가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책을 읽어보며 답을 찾아가는, 나름 능동적인 고민이었다. 어쩌면 부끄러움을 잊기 위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옳다, 는 믿음이 깨지고나서 밀려오는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수밖에 없으니깐. 다행히 나보다 먼저 이런 경험을 해보았던 선배 BJ님에게 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너무나 큰 도움이 된 책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임의 핵심가치 '경청-공감-격려'를 찾게 되었다.



예전에 시내의 어떤 공원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돕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침,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저에게 달려와서 말했습니다. "행패를 부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저는 서둘러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중략)

저는 그 사람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는 저에게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어이, 스님! 지금 나한테 시비라도 걸겠다는 거야?"
"자, 이야기나 한번 해봐요"라고 저는 미소를 띠고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네들이 해주는 급식 말이야. 너무 위선적이지 않아?"
"위선일지도 모르겠군요."
"이 따위 걸로 당신네들이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저는 절대 상대방을 부정하지 않고, 그저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중략)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는 가만히 저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 말이야...... 교도소에 있어."
우락부락한 그의 가느다란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군요. 면회는 가보셨나요?"
"아니"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습니다.
"편지라도 보내보셨나요?"라고 묻자 그는 "까막눈이 뭔 글씨를 써"라며 소리 높여 흐느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써드리겠습니다. 오늘 경찰서에서 돌아오면 같이 써보는 게 어떨까요?"
"써준다고?"라고 온순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하지만 뭐라고 쓰면 좋을지 모르겠어"라며 다시 훌쩍였습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쓰면 좋겠지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같이 써봅시다."

(중략)

우리는 한밤중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지요.


- 구사나기 류슌 지음, 류두진 옮김,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 중, 위즈덤하우스.






동그랗게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모임. 각자의 내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말은 해놓고도 모임장으로서 무언가를 줘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멋진 일을 성취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고 그 때 발휘했던 능력을 통해 나의 장점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세번째 모임 (2016년 07월 24일 일요일 오후 1-3시). 나는 모임이 자리를 잡게 되면 차차 책임과 권한을 멤버들과 나누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재능을 찾아 몰입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며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타인을 사랑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나의 핵심가치.



같이 워크시트를 작성하고. 있는그대로의 내 삶을 공유하고. 지금의 고민을 나누고. (답은 누구도 몰랐다. 아직까지는.) 그런 과정 속에서 마냥 밝고 맑게만 보이는 멤버들이 털어놓은 사연들은 서로의 마음을 울리고 간지럽혔다. 모임장으로서 했던 역할은 중간중간 흐름을 정돈하고 사진과 기록을 남겼던 것 뿐. 나 또한 누구보다 진솔하였고, 위로받았다.


모임 시간이 끝나고도 몇몇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나는 작게 미소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U가 말했다. "모두 정답을 알고 있는데 잊어버린 것 같아요. 누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확신이 없으니까."

S가 말했다. "자기 기만. 실제로는 이게 중요한데 도망가고 있어요."

K가 말했다. "제가 그래서 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그러고 있어서요."








본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모임은 '노아 Know-我'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나만의 길을 찾고 걸어나가는 자아찾기 모임이지요. 2016년 초 꽃향기 가득한 강남의 한 카페에서 독서모임의 형태로 시작되어 현재는 월 2~3회 서울 곳곳으로 떠나는 테마여행모임이 되었습니다.


본 글은 중간진화과정인 '거북이성장클럽'의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전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일주일의 생활을 계획해보는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혼자 해결하기 힘든 일들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 또는 책을 소개해 주거나 다양한 강연과 모임에 참석하며 함께 풀어나가기도 했었구요.


한 분 한 분이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그대로 공감 받고, 서로서로 격려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하고 시도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더 즐겁고 알찬 모임으로 계속 진화해나갈거에요. 자연스럽게.


함께하실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문의사항 또는 참가신청은 저의 페이스북메세지로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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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16. 럭큐레이터. 1일 1책 1글을 행하며 나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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