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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Aug 12. 2016

성장하는 사람들 이야기 (5)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다시 시작하려니 겁이 난다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는 대화의 겉면을 스치고 지나갔고 나는 그 말을 붙잡지 않았다. 발화된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연애하지 않고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왜 포기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길고긴 이유들을 말한다. 그들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기가 하는 생각의 이면에 웅크린 두려움을 끝내 발견해버리고만다.


다른 사람과 가까운 관계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는걸까. 따라오는 모든 감정들을 수용할 여유가 없어서일까. 시작 앞에서 두려워하고 헤아려보는 사람은 도리어 책임감이 강한 것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감당할 수 있는 일만 벌이겠다는 아름다운 마음. 그 마음을 사이에 두고 여름의 풍선과 겨울의 꽃봉우리가 한가득이다.


나 역시도 잔뜩 겁에 질려 있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지금도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가 낯설고 무섭다.) 하지만 네버랜드를 향한 여정을 떠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분명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신발끈을 고쳐매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깐. 그리고 나는 H님이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걸 알고 있다.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바라보는건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네버랜드행 티켓은 오직, 그런 용기를 지닌 사람들에게만 발급되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2년 전에 병을 앓았고 그 병의 고통이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그 기억은 늘 이렇게 말한다.

"조심해. 다시는 앓지 않도록."

그래서 그 기억은 연상들과 함께 공포를 낳는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공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의 당신은 건강하기 때문이다. 생각이-생각이란 언제나 낡은 것인데, 그 이유는 생각은 기억의 반응이고 기억은 언제나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시간 속에서 실제가 아닌 사실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실은 당신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으로 마음에 남아 있는 체험이 "조심해,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도록"이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현종 옮김,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p.68, 2002, 물병자리.






모두가 마음껏 말할 수 있도록 작은 그룹으로 나누었다. 이곳에선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니깐.



연애에 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다섯번째 모임 (2016년 08월 07일 일요일 오후 1-3시).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버린 상황이 기쁘면서도 약간은 어색했다. 다행히 그동안 여러모로 단련된 기존의 멤버분들이 다수여서 금새 즐거운 분위기가 되었지만 침묵이 흐르던 처음을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모임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대화는 끝날줄을 몰랐는데 그럼에도 속시원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동안 고민해봐야할 질문들만 남았고 덕분에 무언가 들려보낼게(?) 생겨 기뻤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



살아가면서 불안과 외로움은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러한 감정들은 연애를 통해 해소될 수 있을까? 이것을 타인을 통해 풀려고 하는 것은 정당한가? 연애를 하면서도 불안하고 외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디까지가 상대방의 책임이고 어디까지가 내 책임인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하고 그의 상태를 비판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 어떨 때 그런 행위가 어느 정도로 허용되는가? 특히나 타인의 연애에 제3자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내가 인식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실제 나의 모습,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나의 모습간에 차이가 있다면 어느 것이 진짜 나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나를 판단해야할까? 만약 상대방이 나의 기준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본인과 내가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간에 차이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까?

누구와 만나야 행복할까? 이런 것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맞는 상대방을 찾는 행동은 '순수'한가? '현명'한가? 정말 '안전'한가? 사랑에 빠지는것은 과연 무작위한가? 나는 어떨때 사랑에 빠졌는가? (그렇게 빠진 사랑은 언제 왜 어떻게 끝났는가?)



이야기를 하면서도 각자는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던. 저마다의 정답을 내놓을 수는 있었지만 누구도 타인의 답을 베낄 수 없었던. 전체이면서도 개인인 그런 만남이었다. (어쩌면 연애도 그런것일런지.)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하였지만 그래도 '전인격적성장 워크시트' 작성도 하고.






여전히 모임의 방향성과 형태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부족함에 몸서리치는 나에게 이번주에도 감사한 인연이 있었다. "리더는 그래야하는거에요." 차분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아낌없이 나누어주신 YH님. 늦은 시간이라 어물거리는 정신이었음에도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억에 새겨진 것은 신신(申申)했기 때문일까.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60의 상냥함과 30의 침묵과 10의 단호함을 가져야 한다는걸. 이제부터 언제 어디서든 그러한 자세를 수련해나가기로 결심해본다.


그리고 그날 밤 무척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 어쩐지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자유형을 하길래 나도 그냥 열심히 파닥거렸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는데다 숨이 막혀 답답했는데 그러던 차에 남의 팔에 한대 얻어맞아버린거다. 짜증을 내며 그냥 벌렁 드러누워버렸지. 하늘하늘 배영을 하고있자니 멀리 노을빛에 물든 구름도 보이고. 그때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말했다. 그렇게 있다가는 뒤쳐져, 정신차려. 느리지만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나는 이유없이 의아하였다. 물 속에 머리를 넣었다 빼었다 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파아란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편안하고 행복했다.



세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관찰할 때 우리는 외적 과정도 내적 과정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즉 단 하나의 과정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완전한 전체적인 운동이다. 내적 운동은 스스로를 외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외적 반작용은 다시 내적인 것에 작용한다. 이런 사실을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법을 알게 되면 그때는 모든 것이 분명해지며 보는 일은 어떤 철학도 선생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당신에게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 그냥 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현상을 봄으로써, 말로써가 아니라 실제로 봄으로써 당신 자신을 쉽고 자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것이 진짜 문제이다. 정신에 완전한 혁명을 가져올 수 있을까?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특히 사회적·경제적으로 매우 안정돼 있는 사람들이나 독단적 신념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사물의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거나 약간의 변화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변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관심가질 바가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건 너무 힘든 일이고, 나한테는 맞지 않는 일이다"라고 좀더 교묘하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그는 이미 자신을 봉쇄한 것이고 질문하는 일을 그친 셈이 될 것이며, 이것은 앞으로 더 나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면 또 당신은 "나는 나 자신 안에 근본적인 내적 변화가 필요함을 알지만 어떻게 그것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에게 그 길을 가르쳐주고, 그리로 향하도록 나를 도와 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한다면, 당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건 변화 자체가 이니다. 즉 당신은 기본적인 혁명에 정말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다만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체계를 찾고 있는 데 불과한 것이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어떤 체계를 줄 만큼 바보스럽고 또 당신이 그것을 따를 만큼 바보스럽다면, 당신은 다만 베끼고, 모방하고, 순응하고, 받아들일 따름이며 그것은 자신 안에 또 다른 권위를 세우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은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당신은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며 그렇지만 그것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현종 옮김,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p.26, 2002, 물병자리.








본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모임은 '노아 Know-我'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나만의 길을 찾고 걸어나가는 자아찾기 모임이지요. 2016년 초 꽃향기 가득한 강남의 한 카페에서 독서모임의 형태로 시작되어 현재는 월 2~3회 서울 곳곳으로 떠나는 테마여행모임이 되었습니다.


본 글은 중간진화과정인 '거북이성장클럽'의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전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일주일의 생활을 계획해보는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혼자 해결하기 힘든 일들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 또는 책을 소개해 주거나 다양한 강연과 모임에 참석하며 함께 풀어나가기도 했었구요.


한 분 한 분이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그대로 공감 받고, 서로서로 격려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하고 시도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더 즐겁고 알찬 모임으로 계속 진화해나갈거에요. 자연스럽게.


함께하실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문의사항 또는 참가신청은 저의 페이스북메세지로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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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16. 럭큐레이터. 1일 1책 1글을 행하며 나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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