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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Oct 20. 2016

담담하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 (12)

우리들의 친구는 서로 닮아 있었다


페이스메이커. 마라톤 선수가 전 구간을 목표 시간 내에 완주할 수 있도록 각 구간의 속도를 조절해가며 같이 달리는 사람. 특히나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은 욕심 때문에 오버페이스를 하여 도중에 지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도움을 준다. 이렇게 유지한 정신력은 완주 직전 10km 구간에서 포기하지 않고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눈부신 오후의 햇살.



각자의 마라톤을 달리고 있었던 사람들.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과소평가하게 되고, 불안에 빠져 있는 사람은 세상 모두가 자신을 공격할 것처럼 느끼게 된다. 사실이 어떻든 그는 자신과 세상을 그렇게 인식한다.


너무 흔해서 오히려 깊이 생각해보지 않게 되는 말들이 있다. '바꿀 수 없는 부분은 받아들여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다.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새삼스럽게 이 말을 뜯어 보기 시작하자 무척 혼란스러워졌다. 어디까지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일까? 얼마나 노력하고 나서 포기해야 할까? 나를 바꾼다는 건 무엇일까? 나를 변화시키긴 했는데.. 왜 '모든 것'들이 변하지 않지?



나를 지켜낸다는 것. 무언가로부터 나를 지켜낸다는 것. 나의 인식으로부터 나를 지켜낸다는 것.



나름의 결론을 내린 건 두려움과 불안의 한 가운데에서 멈춰있을 때였다.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한 발만 떼어도 휩쓸려들어가버릴테지만.) 당연히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을 많이 잃어버렸다. 가령 건강ㅡ2층 높이를 계단으로 올라가기도 힘들 정도라던가. 믿었던 능력ㅡ캄캄하게 느껴지는 앞날과 밀려오는 공포에 잘 하던 일마저도 실수 연발이라던가. 언제 어디서든 일거리에 몰입할 수 있었던 집중력이 채 30분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걸 알아차렸다던가. 또 사람들ㅡ질서정연하게 구성되어 있던 인간관계가 흔들릴만큼 큰 실망을 했다던가.



삶이 나에게 물었다. 오늘도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그 때 생각했던거다. 나의 건강과 능력, 사람들이 사실 안정되어 있었구나.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무척이나 자유로운 선택들로 하루를 채워가고 있었구나. 내심 불만스러웠던 '모든 것'들에게는 변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 중에서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들을 몇 가지 골라 하루를 보내는 데 쓰이기만 해도 충분했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이루어진 나의 하루. 내가 변한다는 것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의 선택이 달라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루가 변하고, 하루가 변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하는 것이었다.



포기하지 않았던 "나에게 고맙다". <나에게 고맙다> (전승환 지음, 2016)


오래 전 보았던 영화에선 "If you make a mistake, if you get all tangled up, you just tango on.*"라고 말했지만 현실에서는 스텝이 꼬이는 순간 우린 어디론가 빠져버린다. 대개는 원치도 예상치도 않았던 곳으로. 최대한 조심스레 발을 내딛어보려 해도 더 빨리! 더 정확히! 더 현란하게!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통에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다리를 보며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지만 빨간 구두를 벗어던져버리는 방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니깐.)


아니, 자신이 빨간 구두를 신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넘어지고 나서야 내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처럼. 또는 그렇게 춤추고 있던 사람들이 멈추고 나서야 내가 가만히 앉아 그들을 구경하고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거나. 내가 적당한 속도로 살고 있는지 감지하기 위해서는 지금 속도와 최적의 속도를 모두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건 오랜시간 주의 깊게 자신과 세상을 관찰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여인의 향기> (마틴 브레스트 감독, 1992) 중에서.)



관찰하고 싶을 땐 관찰일지를 써보는 것도 좋다. KM님은 문득 기록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모두 공감하였다.



그렇게 약하고 부족한 우리에게 만약 절대 흔들리지 않는 페이스메이커가 있다면 어떨까? 항상 곁을 지켜주고 원할 땐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듬직한 친구가 있다면. 그와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내 속도를 가늠해볼 수 있고, 한동안 찾지 않아도 내가 안정되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해주는 그런 친구와 함께 달릴 수 있다면.



선릉역 '최인아 책방'은 생각의 숲이다.



아름다운 생각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 (꼭 한 번 다녀와보세요!)



각자의 그 친구를 데리고 나와 생각의 숲을 거닐었던 열두번째 모임.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보아왔던 사이인 듯 편안하고 즐거웠다. 신기하게도 우리들의 친구는 서로 닮아 있었다. 수많은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 싫증나거나 멀어지지 않고 우리 곁에 가만히 머물러준, 애독서들. 그들의 리듬은 마치 10년을 함께한 밴드처럼 잘 어우러졌다. 아마도 우리가 비슷한 속도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몇 번이고 읽어온 우리의 책들은 손때가 묻고 허름했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애착이 가고 정다웠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사이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만나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나의 마음 속 가장 고요한 자리. 나의 세상 속 가장 평화로운 자리. 그 곳에서 모두가 맨발의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그래서 아주 커다란 존재로, 세상의 사랑의 가득 담아내며, 자유로이 선택하며, 하루 하루를 아름답게 그려나갈 수 있기를.



우리가 사랑하는 친구들. "좋아해, 다정하지 않을 뿐." <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2009)



요즘은 이런저런 형태의 책들이 있지. 그래도 종이책을 가장 좋아한다.



폭.풍.흡.입.



반짝반짝 빛난다. 자기를 가진 사람은.



그런데 행복이 뭐죠?






심플 미니멀 라이프 vs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지음, 2015)



매일 매일 쓰는 물건들만 남기고 모두 버린다. 설레는 존재들만 남기고 모두 내보낸다. 생활에서. 삶에서. 마음에서.



KJ님이 추천해준 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던 듯 이후 '심플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꽤 들었다. 퇴근 후의 시간을 활용해서 방정리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다. 언제 들어와버렸는지도 모를 존재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잊혀진 모습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았던 영화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발견한 팝콘 같다. 커다란 통에 반쯤 남아 있는. 따끈하고 고소할 때의 끌림마저도 눅눅해진. 선택지가 줄어들 수록 결정도 가벼워지겠지. 그렇게 믿어 본다.








본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모임은 '노아 Know-我'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2016년 초 꽃향기 가득한 강남의 한 카페에서 독서모임의 형태로 시작되어 현재는 월 2~3회 서울 곳곳으로 떠나는 테마여행모임이 되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낯선 환경과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나답게 사는건 무엇인지, 삶의 작은 목표들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고민해보는 것.


지금의 선택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말 나의 기준으로 내린 결정이 맞는지, 생각해보는 것.


한 테마에 10명이내의 소규모로 모집하고 있어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그대로 공감 받고, 서로서로 격려하며 지낼 수 있게요. 앞으로도 더 즐겁고 알찬 테마로 계속 진화해나갈거에요. 자연스럽게.


함께하실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문의 또는 참가신청은 저의 페이스북메세지로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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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16. 럭큐레이터. 1일 1책 1글을 행하며 나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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