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해 Feb 12. 2023

4. 일요일의 데이트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인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결혼할 상대를 찾지 못해서 혹은 만나지 못해서. 그녀는 ‘못’이라는 표현이 자신의 의지가 미약하거나 결여된 듯 보이는 저 글자를 한 참 생각하다 결혼할 상대가 없어서라고 정정했다. 결혼할 상대가 지금껏 없었다. 현재 어느 생의 시점에 있든 앞으로 남은 한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결혼서약서 하나 믿고 반지를 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에게 결혼은 평생의 반려자라는 말 중 반려자보다는 평생에 무게를 두었다. 고작 16년의 시간만 곁에 계셨다. 그중 8살까지는 기억나는 것도 몇 되지 않으니 그녀의 엄마보다도 그녀에겐 아빠와의 시간이 더 짧게 느껴졌다. 큰 지붕 같은 엄마였어도 아빠의 부재는 생활 곳곳에서 불쑥 드러나곤 했다. 하다못해 딸기잼 뚜껑하나 여는 일도 수월찮을 때가 많았다. 퍽 소리와 함께 쉬이 열리는 것도 있는가 하면 그녀는 아래 엄마는 위를 맡아 ‘꽉 잡아봐, 미끄러워 그런가, 수건 줘봐’ 등 애를 써야 맛을 볼 수 있는 경우들도 있었다. 작은 잼 병 하나에 온 힘을 쓰고 나면 기다리는 것은 식어가는 커피와 굳어가는 토스트였다. 한 날은 해냈다고 서로 환호하며 으쓱해했지만 아빠만 계셨어도 싶은 날들이 더 많았다.


아침상을 치우고 한 낮이 지나도록 그녀에게 울리는 연락이 없었다.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어두운 핸드폰 화면을 켜 전화기모양 아이콘을 확인해 본다. 부재의 숫자 1은 없었다. 확인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괜찮아’

자신이 연애라도 하면 온종일 홀로 집안에 계실 엄마가걱정되어 맘이 편하겠냐며 다독였다.

      

“지은아, 엄마 약속 있어 나간다. 날씨 좋은데 넌 어디 안 가? 집에만 있지 말고 산책이라도 하던지 해도 적당히 쐬줘야 피부도 덜 늙는다”

“엄마 무슨 약속?”

“선미 아줌마랑 산에 갔다가 거 뭐더라 새로 나온 한국영화 그거 보고 저녁 먹고 올 거야”    

 

‘산은 그래 엄마 거지 하지만 영화랑 저녁은 내 거여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역할극이 바뀐 거 같았지만 해도 봐주어야 피부 덜 늙는다는 말은 자신의 것이 맞았다. 늙고 병들어도 자식 끼니 걱정하는 마음이 부모라더니 시집 안 간 마흔 아가씨의 피부 걱정하는 엄마의 멘트에 그녀는 서로가 제역할을 하고 있는 게 맞구나 싶었다.

닫히는 현관문을 보며 그녀는 자신이 있어주는 쪽인 줄알았는데 떠나지 못하는 쪽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2평의 거실은 아늑했다. 한 번도 좁다거나 갑갑하다는 생각이 든 적 없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이 고스란히 그녀와 엄마에게 상속되었고 아빠의 생명 보험금도 일시불로 받았다. 큰집의 묵은 짐들과 추억 아픔 모두를 정리하고 옆 구축의 대단지 아파트 22평을 매수해 안착했다. 그녀가 중학생이었기에 학교문제로 멀리 가지는 못해도 환경의 변화는 필요하다고 그녀의 어머니가 결단하고 행하셨지만 생활할 현금도 필요했다.

이 전 살던 집보다 자그마한 평수지만 그녀 마음에 쏙 드는 집이었다. 9층 남서향 창 앞엔 학교가 있어 해가 어디 걸리는 일이 없다. 오후 3시까지 들어차는 햇빛이 모녀에게는 꺼져가는 영을 살려내는 불씨 같았다. 그리생기가 돌자 집안에 화분을 하나 둘 들였다. 그녀가 으른이 되는 동안 집안의 대부분의 것들도 같이 늙어갔는데 고무나무만 달랐다. 매년 성장기인 청소년처럼 키가자라고 잘라내면 새순이 금세 돋는 불로장생 같았다. 가운데 두었던 식탁겸용 책상으로도 쓰는 테이블은 그녀가 좋아하는 해와 불로장생 식물 가까이로 조금씩 옮기다 보니 거실전창 바로 앞에 위치하게 되었다.   

   

앉아 한 참 글을 써내리고 있었다. 다음 주까지 보내야 하는 글이었다. 많은 양은 아니었다. A4 15줄 정도 분량의 의기소침함이 표현되는 글이면 되었다. 지금의 그녀 기분과 맞아떨어지는 면도 있어서 어렵지 않게 끝냈지만 하나만 쓰지는 않았다. 적어도 3개의 다른 버전을 만들어 보내곤 했다. 그것이 고객을 만족시키는 하나의팁이기도 했다. 그녀는 작가처럼 글을 쓰지만 아니 사실 작가가 맞다. 대학 졸업 전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투고한 에세이가 당선되어 새롬 문화지라는 곳에 실린 적이 있었다. 대학 신문에 실린 한 줄 공고를 보고 넣은 것이지만 그녀도 그곳이 어딘지 모르고 넣었을 만큼 알려진 문화지는 아니나 산문으로 등단을 했으니 작가는 작가다. 알아보는 이 적어도 세상에 이름 세자 드러내니 한동안은 자신감이 붕 올라가 있었다. 것도 이력은 이력이라고 대형 출판사 면접을 가보면 그녀에게 취업문턱은 꽤나 낮았던 적도 있었는데  오로지 글에만 집중하겠다며 돌아서곤 했다. 의지는 허세에 불과했던 건지 이후 내놓은 글들이 관심받지 못했다. 다시 취업을 해야 하나 싶어 처음 ‘문이 열렸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하던 출판사부터 이력서를 밀어 넣었었다.    

  

"젊은 필력이라 신선했었는데 작가님 죄송해요 글도 유행이 있어서요"

    

요새애들 유행 배우기 힘겨울 거라는 걱정과 동년배인 상사 불편할 거란 배려로 거절되었다. 작가님이라 꼬박 불러주는 것이 직원 뽑지 작가 뽑는 곳은 아니라고 그것마저 선긋기 같아 후끈 달아오른 볼에 걸음아 빨리 가자며 나왔던 기억이다.  

    

“작가님 잠시만요 사무실이라 말씀 못 드렸는데 한 곳 소개해 드릴까요?”   

  

좀 전 하악질 하는 고양이마냥 내쫓기 바쁘던 출판사 면담자 중 한 명이 건넨 명함이 지금까지 그녀를 먹여 살리기고 있다. 15줄짜리 글의 세 번째 버전까지 끝내고 셀프 검수를 할 때 폰이 징 울렸다. 검수를 마치고 메일까지 보내고 확인하려 했는데 징 거리는 소리가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노트북에서 고개 돌려 보니 ‘그분이십니다’라는 네임이 보였다. 그녀는 너무나 완벽한 그의 전화를 놓치지 말자는 다짐으로 그를 ‘그분이십니다’라고 저장해 두었던 것이다.

    

“여보세요”     

앗불싸! 그녀는 심호흡이라도 하거나 몇 번 더 울리면 받을 것을 너무 재발랐던 손가락을 깨물고 싶었지만 늦었다. 이제라도 최대한 태연해지도록 노력해야 했다.

     

“강민호입니다. 통화 괜찮아요?”

“아 네 그럼요”     

‘괜찮았어 쿨하고 쌈박하고 자신감 있어 보여 잘하고 있어’     

“내일 볼 수 있어요? 시간 돼요? 안돼도 되셔야 합니다. 며칠 안 보니 눈에 가시가 돋아 턱까지 내려왔어요. 저 좀 살려주시죠.”     


‘이 저돌적인 귀여움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일 몇 시쯤요? 오전만 아니면 괜찮아요. 어제는 바쁘셨나 봐요?”

    

‘악 무슨 소리야, 차라리 끊어버려!!!’ 말이 먼저 내뱉어졌다. 일요일에 오전만 아니면 된다니 다 된다는 소리랑 뭐가 다르고 어제는 바쁘셨나니 종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대로 전화기를 끊고 싶었다. 마흔 아가씨의 흔들거리는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바닥먼지까지 쓸어 보여주는 셈이었다. 그녀는 이리 너덜 해진 상태에서 일요일 데이트 약속을 잡고 종료를 눌렀다.

작가의 이전글 3. 엄마와 김치찌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