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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해 Feb 17. 2023

5. 두 남자를 처음 뵙겠습니다

39살 카페에서 두 남자를 한 날에 만났다.

전화기가 춤을 추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엔 그녀 마음도 같이 춤을 췄다.  보고자 하는 친구들의 연락은 반갑고 쓸쓸하지 않아 좋고, 일 관련 전화는 인정받고 있음이 깔려있어 자존감이 슬쩍 올라가 좋기도 하지만 자본이쌓이는 소리이기에 정말 좋았다. 그녀는 매일이 이러하면 혼자라도 꽤 살만할 것 같은데 한 달 평균을 내어보면 세상에 내 존재를 아는 이가 있긴 한 건지 싶은 무심한 날들이 좀 더 많은 것 같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녀는 성숙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 ‘성숙’이라는 말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화자의 의도를 몰라 여러 해석을 하게 했다. 첫째, 늙어 보인다는 것인가 둘째, 또래와는 달리 철이 있어 보인다는 뜻인가 셋째, 먼가 좀 아는 게 있어 그만큼 무엇이든 유능하게 해 낼 수 있어 보인다는 의미일까 까지 비슷한 듯해도 들여다보면 차이를 갖는 갖가지 해석 중 어느 쪽에 가까운 건지 구체적으로 ‘그게 무슨 뜻이야?’ 하고 묻고 싶었지만 ‘내가?’ 하며 의아해 하는 반응으로넘기곤 했다. 갸름한 턱선에 짙은 머리색 그려 놓은 듯한 눈썹이 그녀를 단아하게 보이게 했다. 허리 꽃꽂이 세우고 앉아 수업 내 장난질이 없었으니 차분해 보이는 모양새가 성숙해 보이는 말로 쓰였는지도 모른다.


당시는 외모만 그리했다면 지금은 나이가 성숙하다. 며칠은 바쁘다가도 허전하리 만큼 남는 시간이 이어지고 카페트에서 한 잠 자고 일어나 늘어지게 기지개펴는 고양이 마냥 따스한 행복감에 적셔있다가도 그녀를 마구 흔들어 대는 일들이 넘나들다 보니 좋아도 웃음이 아껴지고 힘겨울 땐 매콤한 곱창볶음 한 젓가락에 툭툭 털어낼 내공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이 성숙을 찐으로 반겼다. 이제야 세상과 마주 보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경지의 문을 연 것 같았다. 그녀가  삶의 시간을 덜 격하게 덜 호들갑스럽게 반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해도 예고없이 전화기가 춤을 추는 날들은 비정기적이긴하나 꾸준히 다녀갔다. 그날이 그랬다. 예정없이 두 남자와 대면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녀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마음속 입꼬리가 올라갔던 마음만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센스 있는 카페답게 천장 센서가 그녀를 감지하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센스 끝판왕 아르바이트생이 ‘오늘은 일찍 출근하시네요‘하며 반겨주기에 다가가 미니 초코바 스닉커즈를 두 개 건네었다.      


“와 귀엽다 스닉커즈 좋아하세요?”

“응 글 안 나올 때 먹으면 효과 있어. 일단 뇌가 유연해져야 하는데 나는 단 게 젤 잘 들어”

“미니초코바 자유시간도 있던데요”

“자유시간은 조금 텁텁해 들어간 견과류가 적어서 그런지 풍미는 스닉커즈지. 내가 젤 좋아하는 건 핫브레이크인데 요즘 그건 안보이더라”

“흐흐 작가님 입맛은 초딩이십니다”

“입맛만 초딩이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확실합니까?”

“앗... 하하하”     


많이 줘도 스물셋, 넷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과의 수다는 조금 밀리는 감은 있지만 유쾌하다. 커피 결제를 위해 카드를 꺼내는데 계산대 아래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엄마야! 놀래라 무슨 소리?”


쟁겨놓은 물건이라도 떨어졌나 싶어 놀람과 걱정을 섞어 바라보니 아르바이트생은 아무 일 아닌 듯 카드를 꽂고 결제금액을 누른다. 동시에 밑에서 쑤욱하고 올라오는 형체가 있었으니 그녀는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고용주를 소개하는 언어치고는 짧았다. 붙임성 있는 아르바이트생의 성향을 보아 사장님과의 관계도 친밀하게 정리가 되었나 보다 싶었다. 그는 정수리를 문지르며 인상을 쓰다 그녀와 눈이 맞자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괜찮으세요?”   

  

늘 궁금했던 카페 주인이라 반갑기도 하고 꽤 친해졌다고 여기는 아르바이트생이 친밀하게 대하는 사장인지라 그녀도 덩달아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박은 머리가 아플 것 같기도 하여 인사를 대신해 안위를 물었다.      


“아 픈 데 괜 찮 아 요. 저 속으로 이어폰이 떨어지는 바람에 찾느라고요. 겨우 꺼냈어요”   

  

느릿한 말투로 상황을 설명하며 인사를 대신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한 손엔 하얀색 아이팟이 들려있고 한 손은 여전히 정수리에서 내려오질 못하는 거 보니 꽤나 아프거나 엄살이 있는 타입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흰머리 희끗함이 곳곳에 보이긴 했지만 그녀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매년 점차 길어지는 여름일 수가 어색한 그녀인데 카페사장의 티셔츠를 보니 기후변화에 적응 못하는 이는 자신 뿐인가 싶었다. 그는 파란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한낮의 뜨거움 정도야 반사시켜주마 싶은 위풍당당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그의 가슴과 배 한가운데 그려져 있었다. 하마터면 ‘든든하시겠어요’라는 말이 나올 뻔한 것을  

    

“티셔츠 잘 어울리세요. 생동감 있어 보이구 여름 더위쯤은 다 막아줄 거 같은데요”

로 입막음을 했다. 아르바이트생이 결제를 마치고 돌려주는 카드를 받으며 입막음이 적절했는지 곱씹고 있을 때 그가 이어받았다.      


“아하 하하 더위뿐이겠습니까. 악의 무리도 거뜬하죠. 이야~”


카페 주인장은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배에 달고 팔은 아이언맨 흉내를 내며 아르바이트생이 악당이라도 되는 듯 기합과 함께 물리치는 시늉을 보였다. 실소가 ‘풉’하고 나왔다. 아르바이트생이 고용주를 짧게 소개한 이유가 바로 납득이 되었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의 유쾌함을 넘어선 이었고 그녀는 앞으로 그에게 별 가림 없이 편히 말을 해도 괜찮을 거 같은 사인을 받았다.      


연한 아메리카노의 맛은 오늘따라 입에 더 감겼다. 냉방이 과하다 여겼던 여느 날과 달리 서늘함도 적당하게 느껴져 유난히 글쓰기에 최적화된 날 같았다. 집중은 잘 되는데 채우는 것은 문제가 달랐다. 일로서 적어야 하는 글이 아니었기에 시간이 더 걸렸다. 당장 돈이 달린 일은 초집중이 되어 기계적으로 글이 쓰이는 날들이 많았다. 어차피 가져가는 그녀의 글 전부를 이용하는 일은 잘 없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 자신만의 글을 채울 땐 속도감이 떨어졌다. 생각하고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해가 중천에 오르니 그녀는 허기졌다. 카페에서 직접 만드는 것 같진 않은데 버터향 강한 스콘 맛집이기도 해 그녀는 다시 카운터로 갔다.

 

“스콘이랑 커피요”

“더 연하게 해 드릴까요?”

그녀가 집중하는 동안 아르바이트생이 사라지고 주인장이 고개를 쓱 내밀었다.      

“그럼 감사하죠. 알바생은 어디 갔어요?”

“약속 있다고 해서 일찍 끝내줬죠. 글 쓰는 창작 힘들진 않아요? 작가님이시라고... ”

“무슨... 작가는 무슨 요... 그냥 돈 받고 짧은 글 써서 파는 정도예요. 글 파는 장사치예요. 장사치”     


기후보다 적응이 힘든 게 있었다. 그녀는 작가라 불리는 것에 더 이상 기쁨이 없다. 자신의 글을 쓰곤 있지만 언제 내어 놓을 수 있을지 모르는 글들이었다. 글에 진심어린 사랑을 퍼부었던 이십 대에 산문 등단이후 세상에 이름을 다시 내 놓지 못했고 삼십대 내내 생활을 위해 글을 팔았다. 그녀의 이름 달아 나가는 글들이 아니었기에 작가라 불리면서도 얻어 입은 옷 마냥 맞지 않게 느껴졌다. 결제를 하려고 보니 빈손으로 카운터에 서있었다. 익숙한 공간이기에 지갑 챙기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그녀는 서둘러 카드를 가져오려는데 뒤에 기다리던 이의 팔이 가제트 팔처럼 늘어났다.

      

“이걸로 해주세요. 제가 살게요”

“엇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저기 지갑 있어요”


라고 말하는데 그녀는 붙박이장처럼 바닥에 딱 붙어버렸다. 날 선 콧날에 사각 디자인의 안경이 걸쳐져 있었다. 그녀가 한 30도 정도 올려다보게 되니 키는 180 정도 될 것 같고 반팔 흰색 셔츠가 햇살에 윤이났다. 짧은 골목을 두 번은 돌아야 나오긴 하지만 대학 인근 카페라 대학생, 자취생, 고시생들이 주 층인 카페다. 이곳에서 화이트칼라를 마주할 일은 잘 없다. 어쩌다 교수나 교직원들이 보이긴 했지만 시간을 아끼는 그들의 발걸음까지 끌어들이기엔 위치가 애매했다. 그녀가 여전히 언행일치 하지 못한 채 넋 놓고 아니 대놓고 대신 값을 치르겠다는 손님을 바라보고 있으니 카페 주인장이 그녀를 깨웠다.     


“작가님 카드요. 가져 오셔 야죠”


작가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 자리에 다녀오려니 이미 그녀가 미적거리는 사이 계산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날 선 짜증의 눈빛들에 그녀는 오도 가도 못 한 채 허둥거리니 가제트 팔의 잘생긴 중년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걸로 먼저 하고 갚으시면 되죠”     


그녀는 도리 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줄에서 빗겨 섰다. 잘생긴 중년이 계산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가가 바로 이체를 해드리겠다고 하니 중년은 웃으며 자리가 어딘지 물으며 그녀를 앞세웠다.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러운 중년의 리드로 둘은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지은아, 나 모르겠어? 난 단번에 알아봤는데”

중년은 앉자마자 의미심장한 미소로 아는체 하며 말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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