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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해 Feb 19. 2023

1.  3인3색의 사랑

사랑이었을까


첫 관계였다. 많이 긴장했다.

다부진 몸과 달리 연석의 몸놀림은 서툴렀고 가연의 창백한 몸은 숨 막히게 아름다웠지만 건조했다.

그녀도 긴장하였을 것이다. 연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몇 번의 밤을 함께하여도 다르지 않았다. 가연의 몸은 우기가 오지 않는 사막 같았다. 쩌억 갈라진 마른땅은 한 톨의 씨앗도 그 안에 싹 틔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석은 상관없다 생각했다. 육체의 쾌락을 고민하는 것조차 저급한 일이라 여겼기에 변함없이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     


가연은 달랐다.

그의 최선을 당연히 여기며 돌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주는 자와 누리는 자로 설정된 관계 값이었기에 가연은 그에게 거침없었다. 우위를 선점한 가연은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뱀이 허물을 벗고 떠나듯 그와의 방에서 나와 자신만의 방을 만들었다. 연석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는 작은 뒤척임에도 쉬이 깨는 사람이었으니까. 부부의 물리적 거리는 그 길이가 짧아도 이상메시지가 숨겨져 있곤 했다. 단번에 그것을 감지하기엔 연석은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그의 문에서 그녀의 문까지 거리는 불과 몇 미터가 되지 않았지만 갈라진 틈의 깊이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 수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그는 깨달았다. 그녀의 몸 어느 곳에서도 물줄기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단단히 잠긴 수문처럼 그녀의 마음이 그에게 한번 도 열린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연석은 그녀를 향한 희생과 책임에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그의 수기는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잠들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고, 생에 대한 집착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가연은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헌신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연석은 그녀에게 어느 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고 가연은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연은 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둔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자신을 불편한 게 만드는 것은 어느 것도 참아내지 못했기에 자유로운 나태함을 누리기엔 그가 최선이었다.          






연석은 사는 것에 점점 미련이 없어졌다.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주어진 역할은 많았다. 그가 남은 생을 살아낼 방식은 일 뿐이었다. 일중독인 그를 성공할 자라며 추켜세우듯 비아냥거리는 이도 있었고 그러다 건강 잃는 거 순간이라며 진심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연석은 어느 쪽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수면유도제는 불면증을 돕는 보조 제 이 기보다 깨어있는 시간의 활용을 위함이다. 그는 생의 끝을 당기기라도 하듯 일에 미쳐있었다.


유능함에 대한 보상은 확실했다.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마케팅에서 기획실로 부서이동도 있었다. 기획실이 있는 8층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양쪽으로 문이 두 개 있었는데 한쪽은 기획실이 반대쪽은 사장실이 위치했다. 회사의 중역 대부분이 기획실을 거쳐 갔으니 연석은 고속철에 자리 하나는 마련한 셈이다. 양쪽으로 나뉜 사무실 구조처럼 몸을 이등분한다면 한쪽에선 채워지지 않고 세기만 하는 것 같은데 나머지 한쪽은 승진이라는 인정을 부어주니 연석이 아직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되긴 했다.

     

5층 마케팅실에서 8층 기획실로의 이사는 오전에 빠르게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쇼핑백에 키우는 다육식물 화분과 아내 사진이 있는 액자를 넣어 5층을 빠져나가려다 지나가는 여직원의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에 돌아섰다. 구두 굽소리를 쫒다 보니 여직원의 뒤꿈치에 시선이 멈추었다. 밴드가 붙여져 있었고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따끔거리는 고통이 전해지는 거 같아 인상을 썼다. 그 순간 여직원이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연석은 머쓱했지만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송장처럼 굳어있던 심장이라는 것이 철컥 이며 오래된 기계음을 내기 시작했다.     


연석은 당혹스러움에 그대로 멈춤 상태가 되었다. 누군가 자신이 움직여야 하는 장면에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가버린 것 같았다. 여직원은 먼저 목 인사를 했는데 그 목에서 흔들거리던 사원증엔 하 이 연 이란 이름이 세 겨져 있었다. 입사한 지 반년이 채 안 된 이연에게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신입의 태그를 아직 달고 있었기에 인사는 자동이었다. 하지만 적잖이 당황한 것은 이연도 마찬가지였다. 큰 키에 말끔하게 잘 생긴 외모가 사무실에 존재한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다른 여운이었다.  

         

나와 닮은 사람’ 본능적인 끌림이 있었다.

그러나 이연은 순간적인 혼란을 상자에 담아 깊은 곳으로 밀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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