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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화가 김낙필 Jul 23. 2022

섬 에  와  있 다





남해 벽도에서 첫날밤

천둥 번개와 폭우가 함석지붕을 사정없이 때렸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빗줄기의 난타 소리인가

떠 내려갈까 살짝 긴장도 되고 밤새 덜그럭거리는 낯선 소리에 불안한 밤을 지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자 먼 동이 터 왔다

무공해의 신선한 공기가 폐 속 깊이 스며들어 온다

청명한 하루의 시작이다

지인의 호출로 닭백숙을 점심으로 거하게 먹고 나서

작업 준비에 들어갔다


벽화 그리러 홀로 남해 벽도까지 와 있다

집을 통째로 내어주어서 숙식을 혼자 해결하기로 했다

늘 해오던 살림이라 불편할 것은 없다

무공해 야채들과 해산물, 각종 양념 재료들이 냉장고에 꽈악 차 있다

모처럼 포식하게 생겼다

주방과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서 삼복더위에도 염려 없다


벽에 밑 칠은 로울러로

해놓고 다음날 메인 벽화 밑그림 작업부터 시작했다

혼자 작업이라 녹록지 않다

여러 날  걸릴 듯싶다

짬짬이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둘레길도 걸어보고

쉬엄쉬엄 쉬어가며 작업할 요량이다


섬은 늘 고요하다

간밤 퍼붓던 폭우도 물러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한 날씨가 상큼하다

자전거 타고 해변을 달리자 하늘 길로 떠오르는 것 같다

오랜만에 달디 단 휴식 같은 작업이다


땡볕에 꼬박 한나절을 정신없이 작업하고 나니

땀범벅에 어깨와 종아리가 뻑적지근하다

결국 저녁에 목젖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뿔싸 과욕이 부른 과로다


저녁에 감기약을 먹고 정신 놓고 잤다

내일부터는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해야겠다


섬에 와 있다

백야도 선착장에서 뱃길로 '沙島'를 거쳐 시간 반을 헤쳐가는 섬 '狼島'

얼마 전 다리가 생겨 육지와  

연결됐다

여수에서 고흥반도 쪽으로 두 시간 들어가면 섬에 닿는다

그렇게 지인의 요청으로 벽화 그리러 섬에 와있다


오늘은 밭에서 따온 유기농 옥수수 다섯 자루를 쪄서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달콤했다


지금 여기는 나 홀로 섬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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