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인 화가 김낙필
Dec 27. 2022
서울로 일 보러 왔다가 집에 가는 막차를 놓쳤다
큰며느리 눈치 보기 싫어서 우쨌든 가야 하는데 어쩔 수없이 큰 놈 집에서 하루 신세 져야 할 형편이다
마누라 현주만 살아있으면
전화해서 난리 칠낀데
"니 아버지 일 보고 충주 내려 올라카믄 너무 늦었다고 너희 집에서 한 밤 자고 내일 일 좀 더 보고 내려올란다고 한다"
"그니까 저녁 늦더라도
국끼리고 새 밥 해서 뜨신 끼니 드시게 해라 알겄지?"
"머어?
마누라가 동네 문화센터에서 연말 회식 갔따꼬"
"이 짜슥이 머라카노?
그럼 불러들이든지
아니믄 니라도 저녁해서 꼭 챙겨 드시게 해라"
"만약 느그 아버지 저녁 굶기면 느그들 디지는 줄 알그라"
알긋냐!!!
마누라 현주만 살아있으면
이렇게 전화해서 난리 칠텐 데
현주가 없으니 틀렸고
며느리 눈치 안 보려면
편의점에서 컵 라면이라도 한 컵 먹고 큰애 집에 들어가야겠다
자식 놈 두 놈 모두 마누라한테 잡혀 사니
그 놈들 입장 곤란하지 않게 하려면
내가 처신 잘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럴 때 딸내미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든다
광식이는 며느리가 불편해할까 봐
하룻밤 신세 지기는 것도 영 껄끄럽다
먼저 갔어야 하는데
마누라 먼저 보내고 자기가 남았으니 여러모로 힘이 부친다
오늘따라 마누라 현주의 부재가 눈물겨울 뿐이다
컵 라면을 먹으며 먼저 간 마누라가 아쉽고 그립다
현주야 잘 있제?
나도 잘 있다
어느새 벌써 먼 길 떠나보낸 지 십 주기가 되오나 보다
편의점을 나오는데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다
길음 사거리 내리막 쪽에서 아련하게 우산을 쓰고 현주가 내려오고 있다
광식이 얼굴에 금세 반가운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