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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 慾 을 버 리 다

by 시인 화가 김낙필






나는 저장강박장애를 갖고 있다

쓰지 않고 오래된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늘 끼고 산다

들일 줄만 알지 버릴 줄을 모른다

몇 해를 벼르고 미루고 하다가

오늘 결심하고 정리를 단행했다


족히 40년 된 올드보이와

청춘 때 입던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재활용 수거함으로 보냈다

일 차로 순모 외투, 실크 티셔츠, 마 바지, 가죽 재킷, 점퍼, 양모

털모자, 청바지 등등

역사를 버렸다


병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버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버리고 나니 홀가분하다

이 차로 가방, 신발류를 정리해 버리려고 한다

가방 30개, 신발 20개 정도는 정리하려 한다


겨울 것들을 보냈으니

이제 여름옷들도 미련 없이 보내 버려야 한다

안 입고 아껴 두었던 분신 같은 것들이지만 무거운 짐이려니

훌훌 털어 버려야만 한다


몇 해를 벼르고도 버리지 못한 애욕의 껍데기들이여 부디 잘 가라

저기 남지나해 어느 동네 누군가가 입어주면 고맙고

아니면 면포, 공장용 걸레가 되어도 괜찮다

태워져서 연기가 돼도 어쩔 수가 없는 미련의 찌꺼기 들이다


결국 마지막엔

내 몸뚱이만 남을 것 임을

그마저도 태워질 흔적임을

잘 안다

오늘부터 강박장애를 떨치고 남김없이 버려버릴 생각이다

몸뚱이만 남겨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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