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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화가 김낙필 Jun 22. 2024

구름 위로 산책

출가



자정 넘어 발진하는 마지막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구름 위로 날아갑니다

새처럼 흘러가다 먼동이 터올 무렵 이름 모를 반도자락에 내려앉습니다

해변에는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당기고 은빛으로 팔딱이는 생선들을 퍼 올립니다

옥빛 바다 저 멀리 뭉게구름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찌든 도시를 떠나오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야자수와 바나나 잎으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바나나 잎이 식기가 되고 접시 그릇도 됩니다


구로 디지털단지에서 젊은 청춘을 보냈습니다

늘 기계 소음 속에서 살았죠

숙소 밖으로는 밤새도록 자동차 소음이 들리는 동네

자연의 소리는 한 개도 없는 구로공단

한 때는 나도 산업역군이라는 소리도 들었죠


이제야 자유로운 영혼이 됐습니다

다행히 벌어놓은 재물이 있어 지구별 곳곳으로 자연의 소리를 들으러 다닙니다

그러나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장거리 여행은 버겁습니다

모든 근육, 관절, 장기가 유통기간이 다 된 까닭입니다


어젯밤에는 맹그로브 숲으로 나아가 반딧불이를 구경했습니다

유년시절 풀 숲에서 병에 담아놓고 놀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요행스럽게 한 마리가 내 손바닥에 앉아 놀고 갔지요

신기하고 좋았어요


내일은 박쥐동굴, 원숭이 언덕을 보고 코끼리 타러 갑니다

야자수 밀림이 보이는 전망대도 갈 겁니다


오늘도 비행기 타러 갑니다

출가할 나이로는 좀 늦은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비행기 타는 게 질리지가 않네요

어릴 때 종이비행기를 많이 접어 날려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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