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인 화가 김낙필
Oct 28. 2024
금오산 자락 암자에
이즈음에 피는 동백은 피처럼 붉다
새벽이슬 때문일까
어둠이 걷히는 일출에 얼굴을 내밀고
왜 왔냐고 묻는 물음에 말문이 막힙니다
헐벗은 영혼이 이유 따위가 어디 있겠냐마는
마음고생으로 예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삶이란 거기서 거기라고 쉽게 말하지 마십시오
내 상처가 당신의 상처보다 깊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잔기침으로 밤새 잠 못 드는 요사체에는
길 잃은 처사가 베갯잇을 적시고 있습니다
금오산 자락 향일암에는
새벽부터 해 뜨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모여있다가
겨울비에 속만 적시고 하산하는 구슬픈 족적들이 있습니다
첫차를 타고 여수 시내로 나가
박대무침에 탁주 한 사발 들이키고 혼미하게 돌아가는
암자 곁에는 일 년 내내 이를 지켜보는 동백나무가 있는데
있는데, 있었는데ᆢ
그 암자에 가면 행여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아무런 투정도 없이 돌산 갓김치를 사들고
온 곳으로 다시 돌아들 갑니다
나도 덩달아 기진한 채 그렇게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