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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시인의 밥

시인

by 시인 화가 김낙필


시인 나부랭이나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허시인은

사기당한 마누라를 비명횡사로 보내고

아들마저 버리고 어느 부동산 졸부 여자와 재혼했다


허시인은 나름 수천편의 시를 생산했지만

주목받을 만한 시는 한편이 없었다

정작 내놓을만한 시 한 편이 없으니 무늬만 시인인 셈이다

시인이란 이름표도 무색해서 떼는 게 도리일 것 같다


팔자가 개 똥이라 얼마 전

두 번째 마누라도 동맥경화로 졸지에 보내고 나니

그동안 못 보던 자식들이 몰려들어 재산 한 푼 없이 길거리에 나 앉았다


지인의 소개로 간신히 변방에 기숙사 딸린 비닐 가마니 공장에 취직해서 생전 처음으로 돈을 벌어가며 산다

물론 온몸은 근육통으로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산다


허시인은 시를 쓰는 게 좋다

글 짓기가 끼니보다 좋다

그렇게 좋으니 시를 지으며 평생을 살아간다

허망한 게 세월이라고 어느새 부쩍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

개인 시집 한 권을 세상에 내는 게 목표고 소망이다


시집 제목은 '시인의 밥'

이라고 벌써 지어놨다

허시인의 밥은 詩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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