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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by 시인 화가 김낙필


오랜만에 작업실에 왔다

한동안 그림 작업을 게을리하고 글만 쓰다가

연말 전시회 출품작을 염두에 두고 붓을 잡으러 왔다

오래 쉬었더니 붓끝이 어지럽다

오래 쉬는 것은 소멸이다


시월 첫날이라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왠지 시월스럽다

볕도 부드러워지고 바람결도 차분해졌다

떠나간 님을 생각하는 달이라서 그런지 괜히 센티해진다

그래서 시월인가 보다


미역 한 장 불려놓고 남은 갈빗살로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야겠다

귀빠진 달이니 내 손으로라도 국맛을 봐야겠다

문뜩 어머니 살아생전 끓여주시던 미역국이 생각나서 어느새 코끝이 찡해 온다

내가 세상에 온 근원이니까


낼모레가 추석이라 거리가 분주하다

나라 안팎으로 뒤숭숭하지만 전란이 와도 명절은 명절이다

겸허히 영접한다

대대손손 내려온 겨레의 명일일 지어니


그림 작업이 손에 잘 안 잡힌다

우두망찰 창밖을 바라본다

기우는 가을빛이 예쁘다

고요해서 적막한 오후다


몇 번이고 색을 칠하다가

붓을 놓고 편히 의자에 앉았다

커피 한잔 내려 마시며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


시월은 단풍도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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