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검은 찻잔

달력 한 장

by 시인 화가 김낙필


달력 한 장 뜯어 버리는데 5초도 안 걸린다

이 해도 그렇게 아홉 장을 가볍게 뜯어버리고 세장 남았다

한 달이 하루처럼 지나가버리는 나이에는 가는 세월이 어이없고 무상하다


어느덧 시한부 인생이 됐다

광장 시장에 앉아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을 했다

날씨는 잔뜩 흐려서 한바탕 비를 쏟아부을 기세다

광장시장은 명절 전이라 발 디딜 틈도 없다

K푸드를 즐기려는 외국 여행자들이 절반은 넘지 싶다


이층 찻집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다들 떠나서인지 늦은 저녁 길이 한가롭다

귀성길은 지루하지만 설렌다

일 년에 두 번 곤욕을 치르는 귀향 길이다

3천만이 이동한다니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다들 감수하고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나는 갈 곳이 없다

고향도 없어져 버렸다

도시 한구석에 대동댕이 처진 기분이다

여지없이 뜯겨버리는 달력 한 장 같은 신세다

검은 찻잔이 창밖 어둠 같다


뜯겨진 세월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ᆢ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