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여행사 OOO입니다"
"손님ᆢ11월 18일 터어키 여행 예약하셨죠"
"기타 사항 메모란에 룸 조인 부탁하셨는데
남자분들은 혼자 가시는 분들이
거의 없으셔서 가능할까 모르겠네요"
"룸 조인이 안되면 예약은 취소할까요?"
"네ᆢ 그렇게 해 주십시오"
"여하튼 메모해 놓겠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고 착한 가격이라
온라인상에서 예약을 했지만 홀로 여행이라 싱글룸 차지가
40만 원 정도 추가되므로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남자 싱글 여행자가 거의 없다니까
룸 조인은 불가능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직 출발일 한 달 전이니까
돼도 그만 안돼도 그만이란 심정으로 기다려보기로 했다
11월 초순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도서관을 나서는데 가늘게 폰 신호음이 울린다
"정태우 고객님 맞으시죠"
"네 그런데요"
"M여행사입니다"
"일전에 예약하신 터어키 패키지 상품에 룸 조인 부탁하셨죠"
"다행히 룸을 같이 쓰실 분이 나타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여행 가능하신지요.."
"음ᆢ 네, 네ᆢ 가능합니다"
"혹시 그분 연배는 어떻게 되시나요"
"손님과 같은 나이에 여자분 이신데 괜찮으실는지요"
"네에?ᆢ 여자분과 어떻게 한방을 쓸 수 있나요?"
"여성분은 괜찮다고 하셔서요
뉴욕 본사에 근무하시는 필립모리스 중역분 이신데 한국분 이셔요"
"선생님만 괜찮으시면 여행을 같이해도 괜찮다고 하시네요"
"아, 네에ᆢ예기치 못한 상황이라 좀 당황스럽네요 생각 좀 해보고
내일까지 연락드리면 안 될까요"
"네 그럼 내일 오후 5시까지 결정해서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네에ᆢ 그렇게 하지요"
Philip Morris
"버지니아 슈퍼슬림 블루"를
피우는 여자는 늘 바쁘게 혼자 살아왔다
술과 담배가 배우자고 친구이고 애인이고 동숙자였다
성공한 여자가 즐기는 섹스란 무미건조해서 관심조차 없었다
오로지 일과 사업이 늘 그녀를 흥분시켰을 뿐이다
'헬렌'은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의 상임 임원이다
명퇴를 앞둔 시점에서 회사는 그녀에게 3개월의 보상 휴가를 제공했다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며칠 전 한국에 있는 친구 K에게 전화를 걸었다
H여행사 대표이사 K는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사업가다
전화 통화 중에 K가 황당한 제안을 했다
"이번에 광고한 상품중에 패키지 좋은 게 있는데 가볼래?"
"우리 상품 리스트 점검 중에 터키 상품 예약한 어떤 아저씨가 메모사항에
룸 조인을 부탁했던데 한번 조인해 볼래?
남녀 간 동숙이란 게 긴장감도 있고 매력적이지 않니"
"생면부지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와 같은 방 쓰며 같이 여행한다는 거
이런 특별한 기회가 흔 겠니?
너 답게 스릴 있고 재밌을 것 같지 않아?"
"계집애 얘는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니 무슨 소릴하는거야 너ᆢ"
"천하의 헬렌이 겁내는 일도 있네 너라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작업인데"
"네가 무서운 게 뭐가 있니 안 그래?"
뭐어?...
"나이는 68년생
포털사이트에 인물 검색해 보니 시인, 화가, 소설가로 나오네"
"거기다 너와 갑장이네 그려ᆢ이건 운명 수준 아니야?"
"어때 당기지 않아?ᆢ^^"
"패키지여행에서 여자 싱글 여행객들은 간혹 룸 조인하는 건 봤어도
이성간 룸 조인은 사상 처음인데?"
"헬렌 한번 해보자!"
"이 여자가 사람 잡네ᆢ"
"18일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합류해서
우리 여행팀과 같이 동행하면 돼
담당자에겐 정중히 두 분 잘 모시라고 따로 지시해 놀 테니까 염려 마ᆢ"
터어키 항공 여객기는 장장 12시간을 날아와 1시간가량을 연착하여 "아타튀르크"
공항에 한낮 정오를 넘겨서 도착했다
일행들은 리무진을 타고 다시 한 시간쯤 걸려 호텔 숙소에 도착했다
호텔 라운지에서 가이드의 소개로 동숙자를 만났다
헌칠한 키에 서양 여자를 닮은 동양 여자, 보자마자 검은 슈트에 단발머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준비 없이 처음 보는 서로는 잠시 어쩔 바를 모르고 어색하고 생경스럽고 서먹했다
룸키를 받아 들고 우리는 잠시 호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헬렌입니다 "
한국 이름은 "수연"이라 합니다
김수연(S.Y.KIM)ᆢ
"그녀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기 전에 먼저 악수를 청해왔다"
"정태웁니다"
가볍게 손을 잡으며 나도 답례를 했다
그녀가 말했다
"기이하고 특별한 인연입니다"
"저는 퇴직 전 위로 휴가 중입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 여행을 계획하셨나요"
"아, 오고 싶던 여행지라 몇 번 시도 중에 좋은 상품이 나와서
룸 조인을 별 기대 없이 신청했는데 다행히 동반자가 이렇게 나타나셔서
본의 아니게 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본의 아니게요?ᆢㅎㅎㅎ"
"그럼 제가 구세주네요ᆢ
천천히 원수 갚으세요ᆢㅎㅎ"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먼바다 수평선 해를 바라본다
침대에 누워 일출을 마주하는 아침이 너무 행복하다
리조트의 아침은 고요하다
멀리 떠나와 이국에서 맞는 새로운 아침이다
행복이란 자연에서 오는 것이구나 새삼스레 깨닫는다
해먹에 누워 일몰을 즐기는 낭만도 따로 달콤하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데
회색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오늘도 숨 막히는 삶을 산다
비가 내리면 흠뻑 젖어도 되는
청량한 종려나무 숲에서 오랜만에 비 샤워를 즐긴다
툴툴 털고 들어가는 바다의 온도는 몸처럼 따듯하다
옥빛 바다에 누워 하늘을 보는 무한한 세상
일탈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다
노동에 치어 찌든 몸과 정신은
자주 정화시켜야 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자연의 일부임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도 나선다
낯선 그곳을 향해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