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남 자

by 시인 화가 김낙필





가을남자




전동차 안에는 눈을 감은 남자들이 여행을 떠나고 있다

정동진으로 공룡 능선으로 섬진강으로 비진도 꽃담으로

가을처럼 떠나고 있다

그리운 것은 그리움으로, 아름다운 것들은 사랑으로

땀 한 땀 수를 놓으며 가을 속으로 스며간다

가을 나그네, 가을 소나타..

내릴 곳도 짐 보퉁이도 몽땅 잊어버리고 간다


인간의 숫놈은 여전히 피곤하다

이 가을 세렝게티 숫사자는 먼 초원을 한가로이 바라보고 있는데

인간의 남자는 신도림역에서 역사 계단을

헐레벌떡 두 칸씩이나 점프해 가며 삶을 갈아타고 다시 갈아타고

세속의 시간들을 분주하게 갈아타고 있다

대청봉의 가을은 붉게 물들고 공원 벤치에는 곱게 낙엽 지는데

남자의 가랑이로는 그저 뻑뻑한 땀이 흐른다


화약냄새 그득한 게임방에서 자동소총으로 난사하는 가을은

핏빛 낭자한 선혈을 뿌리며 쓰러진다

남자도 매일매일 제 가슴을 살해하고 살아간다

뉘엿뉘엿 하루해도 저물어 별 없는 밤으로 귀향하는 병사처럼

총대에는 성근 비애들이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다

가을은 울컥 마른기침을 토해 낸다

가을 남자는 겨울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놓치고 만다


마지막 저녁으로 옹골찬 꽃게를 사다가 꽃게탕을 끓인다

꽃게탕이 열심히 끓는 동안 남자는

깊은 가을 잠을 잔다ᆢ<rewrit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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