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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치열한 삶,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다.

by 금숙이

고래



천명관. 문학동네


이 책에 관한 소개는 한참 전에 들었는데, 왜인지 쉽게 잡히지 않아 뒤늦게 읽게 되었다.

굵직한 이야기 덩어리를 이리저리 맛깔나게 꼬아내는 소설을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학생들과 읽을 책을 많이 보다 보니 아무래도 짧은 이야기를 많이 본 탓에, 긴 호흡의 깊은 서사를 잠시 잊고 지냈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책 속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숨이 찼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등장인물들이 지닌 삶에 대한 강력한 욕망들이 너무 자극적이었다. 내게는.

노트를 펴서 오래간만에 줄거리를 정리했다. 사실 수업 교안을 한참 만들 때는 읽은 책 모두를 이렇게 정리해서 교제로 쓸 수 있게 1차 정리했었는데, 요새는 학생들과 대화를 하며 책을 읽은 감상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아 잘 쓰지 않았다.

줄거리를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으면 생각이 깔끔하게 정돈된다. 당연히 글도 매끄러워지고.

정리하고 보니 글의 핵심 인물들은 국밥집 노파, 금복, 춘희라는 세 여인이다. 기묘한 인연으로 얽힌 이 여인들은 그만큼 여러 사건을 겪으며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간다.

정신없이 그네들 인생을 읽어내다 보면 워터슬라이드를 탄 것처럼 짜릿하고 어지럽고 흥미진진하다.

나는 춘희의 삶이 가련하면서도 끌렸다. 다른 이와 다르게 태어나 고통받았지만, 외부의 고통은 춘희를 진정 괴롭히지 못했다. 그녀의 괴로움은 모두 그녀가 자신 안에서 만들어낸 것만이 진짜 고통이었다.

세상은 결국 누구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그럼 가장 근본적으로 잘 살아낸 이는 춘희가 아닐까?

세상에서 완벽히 사라지며 빛이 되고만 춘희. 그리고 그 마지막에 함께해 준 점보.

둘 다 편안한 빛이 되었다.



책에는 폭력도 섹스도, 찰진 음담패설과 욕설이 가득이다. 그러나 읽는 내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래 인간도 동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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