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달리는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실제 화성과 금성은 사람이 살기에 '지옥'과 같은 기후를 자랑한다. 지구와 가장 비슷한 환경이라는 화성도 인간이 살기엔 지나치게 춥고, 건조하다. 금성의 대기는 유황 물방울로 가득 차 있는데다, 그것이 땅에 닿기 전에 뜨거운 열에 물과 황산 분자로 나뉘어 버린다. 지구라는 인큐베이터가 없었으면 인간은 이만큼 번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구적 관점에서 인간의 존재는 굉장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코스모스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중에서도 지구인이 장차 정착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화성에 대해 생각하던 중에 자전거 도로에 들어서니 널따란 갈대밭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아래까지는 시야에 보이지 않던 갈대밭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순간, 화성이 겹쳐 보였다. 건조한 사막, 굉장히 추운 기후. 인간이 살기에 척박한 조건이지만 그나마 인류의 미래를 걸만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점쳐지는 공간 말이다.
얼굴에 훅 끼치는 공기가 너무 차가웠다. 차가워서 볼 언저리와 귓바퀴가 아플 정도였다. 언덕에 가려 그늘이 진 길을 몇십 미터 달리는 동안 그만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아프고 귀가 아팠다. 달리는 중에 상쾌한 기분은 전혀 없고 고통만 생각났다. 하지만 어서 빨리 이 그늘 길을 달려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잠까 뒤로 돌아가도 어차피 다시 이 길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햇빛이 간절했다. 저 멀리 보이는 햇빛이 드는 길가로 나서기만 하면 얼마나 따뜻할까. 그 생각만 하면서 저벅저벅 달렸다. 조금만 더 가면 이 아픔도 사라지겠지. 그늘과 양지의 경계를 지나 몇 걸음 갔을까. 햇빛이 얼굴과 귓등에 조금씩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저 멀리 우주 공간을 건너서 태양에서 나온 빛 에너지가 내 얼굴에 닿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태양은 별 의미 없이 내뿜는 빛과 열에너지. 잉여로 생긴 그것들 덕분에 지구의 내가 살아간다. 잠깐 햇빛이 가려진 것만으로 귀가 떨어져 나갈 만큼의 추위를 느끼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