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서 생각하는 여자
"선생님 저는 일주일에 책을 열 권씩 읽고 있습니다."
자신의 독서량과 성실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제자에게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럼 자네, 생각은 언제 하나"
그 선생이 유명한 철학자였다던가 과학자였다던가.
텍스트와 음악, 사람과의 대화는 그 자체로 새로운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은 슈퍼마켓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중요한 건 그 물질들간의 '조합'이다. 보고 듣고 읽은 것들을 하나의 새로운 조합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은 연습과 게으른 시간을 바탕으로 길러진다.
아침 달리기의 30분간의 시간을 이런 게으른 생각의 시간이라 부르고 싶다. 머릿속의 생각이라는 게 컴퓨터 시스템처럼 전원을 누르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위에서 쏟아지는 물에 떠밀려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자연적인 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는 중에 여러 가지 생각이 천천히 지나간다. 전날 밤에 읽었던 책과 며칠 전에 들었던 노래의 영어 가사, 지난달에 누군가와 나눴던 대화의 일부가 순간 하나의 연결고리로 맞물리는 순간이 온다. 충분한 시간을 들이고, 충분히 신선한 공기가 주입되면 당시에 구겨지듯 내 안에 던져졌던 기억의 조각들이 새로운 조합으로 맞춰지는 것이다.
달리는 길 옆에 어두운 터널이 있다. 어떤 이가 그 동굴과 같은 곳에 불을 피워두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고, 첫새벽에 실안개가 낀 풍경에 소리 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겪어본 적 없는 석기시대의 풍경을 상상하게 했다. 먼 옛날 불을 처음 발견한 최초의 인간에서부터, 그 먼 옛날을 글로 배워 상상해보는 현대의 나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전승되고 덧붙여지고, 사라졌다가 새로 발견되는 지식들. 한 사람의 인간 안에 인류 전체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 인간의 뇌 속 뉴런은 당나귀가 수레를 끄는 속도로 아주 느리게 활동하지만, 특유의 끈기와 호기심을 동력 삼아 우주의 비밀들을 하나씩 밝혀왔다. 한 인간이 평생에 연구한 것을 그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그다음 세대가 더 많은 것을 발견해줄 것을 기대하며 철저한 기록으로 남겨둔다. 중간에 잠시 사라지기도 하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같은 문제에 흥미를 느끼는 인간이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 하나의 우주가 사라진 것과 같은 상실감이 든다. 그분이 평생의 삶을 통해 축적해온 대한민국의 역사가 잠깐이지만 빛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명망 있는 어른이 돌아가시는 사건은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희망을 잃어버린 감상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분의 삶과 기록을 기억하는 이들에 의해 역사는 앞으로도 덧붙여져 갈 것이다. 감옥 안의 한 뼘 양광에도 삶의 감사함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는 그분의 한마디 한마디가 다음 세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억 년에 걸쳐 생각해 오던 것들을 뒤따라 생각하는 것. 그것도 게으른 생각의 시간 동안 두서없이 떠올리는 일은 중요하다. 무엇이 어떤 고리로 연결되어 새 생명을 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